미국 수도 워싱턴DC의 관광명소인 스미스소니언 국립동물원은 미국을 대표하는 동물원으로 유명하다. 미국과 중국이 수교하기 전이던 1972년 중국으로부터 대왕판다 한쌍을 선물받아 키우면서 그 유명한 ‘판다외교’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판다외교 50주년을 맞아 성대한 기념행사도 열렸다. 그런데 인간과 동물의 만남의 장인 이 동물원에서 전례없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야생여우가 홍학우리에 침입해 난동을 부리면서 무려 25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지난 1970년대에 홍학사가 만들어진 뒤 포식자의 침입으로 살상사건이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물원 측은 “우리 동물원의 구성원이었던 생명들의 비극적 손실”이라며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참극의 현장이 발견된 것은 2일(현지 시각) 오전이었다. 일일 아침 점검을 하던 직원들은 홍학 우리를 열고 들어선 순간 눈앞에서 벌어진 처참한 장면에 말을 잃었다. 홍학 스물 다섯마리와 고방오리 한 마리까지 도합 스물 여섯개의 사체가 잔혹하게 널부러져있었다. 눈앞의 참상에 치를 떨고 있던 동물원 직원들의 눈에 우리의 구석에서 빤히 쳐다보던 여우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 여우는 재빠르게 몸을 놀리며 우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몸을 심하게 다쳤지만 간신히 목숨은 부지하고 있던 홍학 세 마리도 찾아냈다.
이 홍학사에 터잡고 살던 무리는 본래 74마리였다. 직원들은 우선 살아남은 홍학들을 긴급히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사건이 발생한 홍학사 는 1970년대에 지어져 최근 대대적인 시설 보수공사가 진행중이었다. 하지만, 이런 류의 사건이 발생한 적이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동물원 측이 큰 충격을 받은 이유다. 동물원 측은 우선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진상조사에 나섰다. 이날 오전에 참극 현장을 확인전까지 가장 최근 일일점검은 전날 낮 2시 30분이었다. 참극은 그 사이에 벌어진 것이다. 동물원 측은 울타리를 샅샅이 뒤진 끝에 소프트볼만한 구멍이 난 것을 확인했다. 이번 집단살해사건의 범인인 여우가 이 구멍을 통해 침입했을 가능성이 유력하게 제기됐다. 동물원은 우선 울타리를 긴급 보수했다. 또한 여우 등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덫을 놓았고, 실시간으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도록 영상 기록 장치도 달았다. 하지만 스물다섯마리의 홍학을 허망하게 잃고 난 뒤 취하는 이번 조치가 전형적인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번 사건을 통해 홍학의 기구한 운명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이국적인 생김새와 아름다운 분홍빛 깃털, 그리고 사뿐사뿐 걸어다니는 맵시있는 자태 때문에 홍학은 전세계 어느 동물원에서나 인기만점의 전시 동물이다. 홍학들이 단체로 걸어다니는 행위를 ‘홍학쇼’라고 붙일 정도다. 하지만 야생에서 홍학은 약자 중의 약자다. 다른 물새들에 비해 덩치가 작고 왜소하며, 공중에서 하늘로 솟아오를때도 다른 새들보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좀 더 걸리는 편이다. 이런 점을 간파한 육식동물들에게 홍학은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먹잇감 중 하나다.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홍학이 개코원숭이나 재칼, 하이에나 등 맹수들에게 사냥당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여우 역시 특유의 사냥본능을 앞세워 홍학무리를 휘저으며 살상과 포식을 일삼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