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 도중 상대방 몰래 피임도구를 제거‧훼손하는 ‘스텔싱’ 행위에 대해 캐나다 대법원이 성폭행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29일(현지시각) 캐나다 CBC뉴스에 따르면 대법원은 이날 피임도구를 사용한 척하거나 합의 없이 이를 제거하는 건 성폭행 여부를 가리는 법적 근거인 ‘동의하의 성관계’를 위반할 수 있는 행위라고 결론냈다. 대법원은 다수의견을 통해 “성관계 시 콘돔 착용 여부는 근본적으로도 구분되는 신체적 접촉”이라며 “콘돔을 사용하는 조건으로 성관계에 동의한 고소인은 콘돔을 제거한 성관계엔 동의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재판은 2017년 3월 온라인을 통해 만난 남녀가 성관계를 가지면서 시작됐다. 두 사람은 성관계 전 콘돔을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두 번째 성관계 때 남성은 약속을 어기고 콘돔을 착용하지 않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여성은 남성을 고소했다. 1심 재판부는 콘돔 사용에 동의했다는 여성의 주장이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여성은 항소했고 2020년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항소심은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새로 심리하라고 명령했다.
무죄 판결이 파기되자 남성은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다만 ‘스텔싱’ 행위를 어떻게 볼 지에 대해선 대법관들의 의견이 5대 4로 갈렸다.
소수 의견을 낸 대법관 4명은 이번 사건에 대해 사기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콘돔 착용을 속이는 건 성적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성폭행 혐의로 다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견을 낸 셰일라 마틴 판사는 “콘돔 사용이 성관계의 조건이라는 건, 콘돔 없이 성관계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성관계 문제에 있어서 ‘안 된다면 안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