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이 강력 범죄 온상으로 악명을 떨치던 1980~1990년대, 거물급 범죄자들을 잇따라 기소하며 강골 검사로 이름을 날렸던 앤드루 멀로니(91) 전 뉴욕동부연방지검장이 지난 15일 타계하면서 그에 대한 추모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그가 몸담았던 동부연방지검은 브레온 피스 지검장 명의의 추도 성명을 내고 “그의 지휘하에 검찰은 뉴욕 마피아 조직의 근간을 뒤흔들었던 조폭 기소 등으로 탁월한 성과를 보였다”며 “그의 영향을 받아 훌륭한 검사와 법률가가 된 사람이 너무 많아 일일이 이름을 나열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검찰이 이 같은 추도 성명을 발표할 정도로 멀로니는 검사들의 우상으로 꼽혔다. 뉴욕 브루클린 토박이인 그는 고교 졸업 후 웨스트포인트(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사관학교 시절엔 아마추어 복싱 선수로 활약하며 교내 대회 및 학교 대항전을 잇따라 제패했다. 졸업 후에는 육군 특수부대(아미 레인저)에서 군생활을 했고, 제대 후 포덤대 야간 로스쿨을 거쳐 로펌 변호사로 일하다 1986년 동부연방지검에 부임해 6년간 수사를 지휘했다. 뉴욕이 갱단과 마약, 부패 스캔들 등 범죄로 몸살을 앓아 이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들이 쏟아지던 시기였다.

1992년 뉴욕 동부연방지검장이었던 앤드루 멀로니(왼쪽)가 후배 검사 존 글리슨(현 연방양형위원)과 함께 마피아 두목 존 고티 공판에 참석한 모습. 당시 고티에게 적용된 14개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받으며 종신형 판결이 나오자 미 언론들은 대형 범죄 조직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이례적인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했다./시그마/게티이미지코리아

그는 뉴욕 마피아 조직의 우두머리 존 고티를 감방으로 보내며 이름을 알렸다. 고티는 뉴욕 5대 마피아로 통하는 ‘감비노 패밀리’를 이끌며 살인과 도박, 뇌물 등의 혐의를 받았지만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갔다. 여느 조폭 두목과 다른 말쑥한 외모와 옷차림으로 연예인급 인기를 몰고 다녔다. 그러나 멀로니가 지휘한 검찰 수사팀은 1992년 14개 혐의로 고티를 기소했다.

재판이 열릴 때마다 법정 앞에는 고티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소란을 피웠다.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도 검찰은 고티가 조직원들과 살인 계획을 모의하는 육성이 담긴 테이프를 재생하는 등 범죄 혐의를 입증했고, 고티는 기소 죄목이 모두 유죄로 인정해 종신형 복역 중 2002년 사망했다.

전세계 코카인의 70%를 장악했던 콜롬비아의 전설적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몰락도 멀로니가 지휘한 수사가 단초였다. 검찰은 1989년 11월 110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비앙카 항공기 폭발 사건의 배후로 그를 지목하고 기소했다. 운신의 폭이 좁아진 에스코바르는 체포 뒤 한 차례 탈옥했다가 1993년 사살됐다.

현지 언론인 브루클린 데일리 이글도 멀로니의 별세를 계기로 그가 이끈 뉴욕 검찰 황금기를 조명했다. 그가 지휘한 사건 중에는 강력 범죄나 고위층 비리뿐 아니라, 가짜 어린이용 사과 주스를 제조·판매한 식품 회사, 소비자에게 이용료를 과다 청구한 렌터카 업체, 안전 운항 기록을 조작한 항공사 등 이른바 ‘민생 사건’들도 상당했다. 멀로니는 최근 배우자를 먼저 보낸 뒤 심신이 급격히 쇠약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그와 65년간 해로해온 부인은 5주 전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