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스위스 제네바 모터쇼에 참석한 이스라엘 해운갑부 이단 오퍼(왼쪽)와 부인 바티아 오퍼./로이터 뉴스1

이스라엘의 유명 억만장자인 이단 오퍼(Idan Ofer)와 아내 바티아(Batia)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를 지지한 하버드대 학생 단체들에 대학이 미온적으로 대응했다는 이유로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정책·행정대학원) 집행이사회에서 사임키로 했다.

미국 뉴욕포스트는 12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매체 ‘더 마커’를 인용해 “오퍼 부부가 하마스 성명 사태에 대한 항의 차원으로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집행이사회를 그만둘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단 오퍼는 유대계 해운 갑부 오퍼 가문(家門) 출신으로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이스턴 퍼시픽(Eastern Pacific) 해운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가 운용 중인 화물선은 210척이다. 그는 또 XT해운과 특수화학물 운송 전문 회사 에이스 탱커스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주식회사(Israel Corp) 지분 51%와 스페인과 포르투갈 유명 프로축구팀 지분 등을 보유하고 있다 포브스는 이단 오퍼의 순자산을 140억달러(약 19조)로 추정했다.

이단 오퍼는 201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학생들을 위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 부친의 이름을 딴 ‘새미 오퍼 펠로십(the Sammy Ofer graduate fellowship for emerging leaders in Israel and Palestine)’ 장학금을 마련하는 등 갈등 해소를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하버드대 학생 단체들이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지지하고 이후 대학 측이 별도의 입장을 내는 과정에서 크게 실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지난 7일 하버드대 35개 학생 단체들은 “모든 폭력은 이스라엘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오늘의 사건은 진공 상태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가자지구 수백만명의 팔레스타인인은 ‘야외 감옥’에서 살도록 강요당했다”며 “앞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폭력을 온전히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대학 측은 뒤늦게 학생들의 성명이 대학의 입장은 아니라며 “이번 주말 이스라엘 시민들을 겨냥한 하마스의 공격으로 촉발된 죽음과 파괴에 비통한 마음”이라고 발표했지만, 이 성명은 다시 “민간인을 살해한 하마스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클로딘 게이 하버드대 총장은 지난 10일 후속 성명을 통해 “하마스의 잔학 행위를 비난한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지역에서 벌어진 오랜 분쟁에 대한 개인의 견해와 상관없이 혐오스러운 행위”라고 했다.

하버드 대학의 입장에 대해 이들 부부는 “대학 총장이 대학살의 책임을 이스라엘에 돌린 학생 단체의 성명을 비난하지 않는 충격적이고도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며 케네디스쿨 집행이사회에 사임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하버드대 총장 클로딘 게이./ 로이터 뉴스1

하버드 학생들의 이스라엘 비난 성명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이스라엘인은 이단 오퍼만이 아니다. 이에 앞서 유대계 헤지펀드 거물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캐피털 회장은 이 같은 성명에 서명한 학생들을 채용하지 않겠다며 “학생 모임 명단을 구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유대계 자본 권력이 하버드대 학생들의 성명에 비판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 이스라엘에 사태의 책임이 있다고 성명을 발표했던 34개 하버드 학생 모임 중 4개 모임이 입장을 철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