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WP)의 외교·안보 전문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가 30일(현지 시각)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를 만류했다”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28일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 재발로 퇴임을 발표했다.
이그나티우스는 이날 칼럼에서 “아베는 트럼프 대통령의 변칙적인 행동을 관리하는 데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지도자였을 것”이라며 “(아베는) 일본의 안보는 (미국에서) 누가 집권하든 미국과 좋은 관계를 맺는 데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과 미국에 이익이 되는 합리적인 정책을 위해 미묘하게 트럼프를 구슬렸다”고 했다. 아베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가장 먼저 뉴욕의 트럼프 타워로 달려가 트럼프를 만난 지도자였고, 미·북 정상회담 후 트럼프를 노벨상 수상자로 추천하는 등 ‘아부 전략’으로 트럼프의 마음을 얻었다.
이그나티우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수시로 일본의 대미 무역 흑자를 비판하고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했지만, 결국엔 아베가 요청하는 대로 해줬다고 전했다. 아베는 일본 주둔 미군 기지 없이 태평양을 방어하는 것이 얼마나 더 비쌀지 트럼프에게 상기시키면서도 “미국 젊은이들이 일본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는 것에 감사하다”며 설득했다는 것이다.
이그나티우스는 또 “그 일본 지도자(아베)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를 만류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아베가 주한미군의 중요성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아베가 주일미군의 중요성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 반대의 뜻도 함께 밝혔을 가능성이 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도 이날 WP에 기고문을 싣고 “아베는 북한의 핵, 생물·화학 무기 프로그램과 탄도미사일 능력의 제거를 끈질기게 추구했다”며 “그는 트럼프·김정은의 황홀경 속에 길을 잃기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을 현실과 가까운 곳에 묶어 놓는 무거운 금속 체인과도 같았다”고 했다. 그는 또 “아베는 역내와 그 너머에서 패권을 장악하려는 중국에 맞서는 워싱턴의 ‘자유롭게 개방된 인도·태평양’이란 구호를 실제로 창시한 사람”이라고 했다.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을 뜻하는 ‘인도·태평양’이란 용어는 일본이 고안했고, 이를 미국이 받아들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밤 트위터에 “방금 내 친구이자 곧 사임을 앞둔 아베 신조 총리와 멋진 대화를 나눴다”며 “신조는 일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총리로 기억될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31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가 오전 10시쯤부터 약 30분간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회담을 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외교정책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마이클 그린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부소장은 일본 아사히신문에 “한국에 대한 (아베의) 대응은 실패”라며 “한·미·일 안보 체제는 동아시아 안정과 안보에 직결되는 문제”라고 했다. 한·일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으면서 미국 입장에서 중요한 한·미·일 3각 협력 체제를 흔들었다는 지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지난 28일 사설에서 트럼프와 아베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위안부 문제 등 한국과의 갈등을 아베의 외교 실책으로 꼽았다.
아베의 이번 사퇴가 자신의 정치적 스캔들을 피하기 위한 것이란 지적도 있다. 나카노 고이치 일본 조치(上智)대 교수는 이날 뉴욕타임스(NYT)에 게재한 ‘아베 신조는 병들었다. 하지만 이게 그가 사의를 표명한 유일한 이유일까’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아베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실제 이유는 코로나 대응 실패와 각종 정치 스캔들에 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