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저녁, 미국 워싱턴 DC 북서쪽 애덤스 모건 지역의 한 멕시칸 요리 음식점에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M·Black Lives Matter)’ 시위대원 100여 명이 들이닥쳤다. 애초 흑인들이 많이 살던 이 지역은 재개발(gentrification) 이후 백인들이 여러 나라의 음식과 문화를 즐기는 주요 거리가 됐다. 시위대원들은 전날 위스컨신 주 커노사에서 제이콥 블레이크라는 흑인 청년이 등에 경찰의 총격을 받고 하반신 마비가 된 사건으로 격앙돼 있었다. 시위대는 이미 몇몇 음식점들에서 “불지르고, 새로 들어왔다(fire, fire, gentrifier)”라며 백인 손님들과 충돌했고, 한 흑인 주동 여성은 “백인 시위대원들이 앞장 서서 백인들을 이 투쟁에 규합하라”고 했다.
이어 멕시칸 음식점을 점령한 시위대는 테이블마다 손님들에게 연대감의 표시로 자신들처럼 주먹을 치켜 올리라고 윽박질렀다. 손님들은 하나 둘씩 주먹을 치켜들었다. “백인의 침묵은 폭력이다”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고 외치던 이들은 백인 여성 로런 빅터(49)와 친구가 앉은 테이블에도 몰려들었다. 동석(同席)한 친구는 마지못해 손을 들었지만, 빅터는 거부했다. “불 지르고 재개발한 곳을 즐기는 백인의 특권 의식” “이봐, 그들[백인 경찰]을 멈추자고!” “침묵하는 백인은 *같다” 등 고함과 모욕적 언사가 외쳤지만, 빅터는 끝내 손을 들지 않았다. 그가 뭐라 말하는지는 시위대 함성에 묻혔다.
백인 여성 빅터가 BLM 시위대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 이 짧은 동영상은 소셜미디어에서 1200만 명 이상이 봤다. 대부분의 반응은 굴하지 않은 빅터에 호의적이었다. 그리고 4일, 빅터는 워싱턴 포스트에 “나는 왜 주먹을 치켜들지 않았나”는 제목으로 기고했다. 그는 “여러 번 흑인 인권의 존중을 요구하는 BLM 거리 행진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며 “약간의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고 했다.
빅터는 “우선, 이 시위를 이끌어낸 사건을 잊지 말자”고 했다. 그는 “제이콥 블레이크 총격 사건은 아무리 상황에 대한 설명이 엇갈려도,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며 “이렇게 발생해서는 안 되는 유사한 (경찰) 총격이 너무 많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끔찍한 (경찰 총격) 사건에 대해 강한 목소리로 분노를 표출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타인의 시위 참여를 협박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고, 이건 그냥 겁박하는 것(bullying)”이라고 했다. 자신은 시위대에게 “당신들은 누구고, 왜 시위하느냐”고 여러 번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내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에 참여해 주먹을 치켜들라는 그들의 요구가 내 손을 막았다”고 했다. 하지만 빅터는 “그들의 정체(正體)와 시위 목적을 알았더라도, 그 상황에서 나는 주먹을 올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나의 지지를 원한다면, 자유로운 상태에서 요청해야 하며 그게 우리가 민주주의에서 하는 일”이라고 했다.
동영상 중간쯤에서 한 시위 여성이 빅터에게 “크리스천이냐”고 묻는다. 빅터는 기고문에서 “내가 (백인)크리스천이라서 주먹을 안 들었느냐고 비난조로 묻는 것이었지만, ‘좋은 크리스천이라면, 당연히 손을 들어야 한다’는 뜻에서 물었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빅터가 “아닌데, 그걸 왜 묻지?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되물었을 때, “아무도 답이 없었고 시위대원들은 ‘그 반문(反問) 자체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고 했다.
동영상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들은 결국 빅터를 포기하고, 그 자리를 뜬다. 빅터는 그들로부터 아무런 해(害)도 받지 않았다. 빅터는 “시위대는 다양한 인종적 배경의 젊은이들이었고, (불의 저항에 대한) 희망과 감사도 동시에 느꼈다”며 “월요일 저녁을 더 엉망으로 보낼 방법은 많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