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망명한 중국 학자 옌리멍(閻麗夢)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바이러스연구소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해 파문이 이어지고 있다. 그가 동료 3명과 작성해 14일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26쪽짜리 논문은 전 세계에서 사흘 만에 57만 조회 수, 43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그간 미국 일각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등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한연구소에서 유출됐을 수 있다는 의혹을 집중 제기했다. 옌리멍의 논문에 이들이 반색할 만하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옌리멍의 주장을 옹호하는 정치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트위터는 16일(현지 시각) 수십만명이 팔로하던 옌리멍의 계정을 “운영 규칙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정지했다. 트위터는 5월부터 ‘가짜 뉴스’로 판명된 트윗에 라벨을 붙여 가짜 뉴스로 표시해 왔는데, 계정 정지는 드문 일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페이스북은 옌리멍의 인터뷰 영상에 “독립적인 팩트체크 기관에서 거짓이라고 판단한 코로나 정보가 반복되고 있다”는 경고를 달았다. 인스타그램도 그의 인터뷰 영상에 ‘허위 정보’ 표시를 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옌리멍은 홍콩대 공중보건대학에서 면역학 연구로 박사후 과정을 밟은 30대 여성이다. “중국 공산당이 바이러스를 의도적으로 퍼뜨려 세계에 해악을 끼치려고 했다”고 꾸준히 주장해 왔다. 7월 폭스 인터뷰에서 “작년 말 홍콩대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처음 연구하며 인간 간 전염성을 보고한 뒤 당국의 감시와 압박을 받았다. 진실을 세계에 알리자는 사명감으로 4월에 미국으로 도망쳤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는 “옌리멍이란 사람을 모른다”고 했다. 홍콩대는 그를 제적 처리했다.
그가 이번에 논문을 실은 곳은 전문 학술지가 아니라 동료 평가(peer review), 즉 학계의 1차 검증 없이도 논문을 자유롭게 올릴 수 있는 제너도란 사이트다. 그는 논문이 정통 학술지에선 모종의 검열로 게재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논문의 핵심은 “코로나 바이러스는 박쥐에서 분리한 바이러스를 기반으로 인간 감염을 일으키도록 특별히 제작됐다”는 것이다. 옌리멍은 코로나 바이러스 표면의 단백질이 자연에 없는 형태이며, 인간 세포에 잘 침투하도록 유전자 가위(유전체에서 특정 DNA를 잘라내는 기술)가 사용된 흔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생화학무기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6개월 이내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만들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영미권의 바이러스 권위자들은 논문이 “허무맹랑하다”고 했다. 칼 베리스트룀 워싱턴대 교수, 영국의 앤드루 프레스턴 박사는 “논문이 과학 데이터가 아닌 실체 없는 주장으로 가득 차 있다”며 “괴이한 문서”라고 했다. 그가 제시한 ‘조작 근거’에 대해서도 안젤라 라스무센 컬럼비아대 교수, 아린제이 바네르지 맥매스터대 교수는 뉴스위크 인터뷰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단백질 형태는 자연 상태의 모든 DNA 염기서열에서 나타난다”고 했다. 남재환 가톨릭대 교수는 본지에 “현재 기술력으론 인공적으로 바이러스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옌리멍이 극우·반중(反中) 인사들과 연계돼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논문에서 자신의 소속 기관으로 뉴욕 소재 ‘법치사회&법치재단’이란 곳을 적었다. 이 재단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책사였던 극우 전략가 스티브 배넌과, 왕치산 부주석 등 중국 지도부 비위설을 폭로한 망명 중국 재벌 궈원구이가 손잡고 만든 단체다.
옌리멍은 15일 폭스뉴스의 터커 칼슨 쇼에 ‘중국의 내부고발자’란 이름으로 출연, “중국 공산당이 바이러스를 의도적으로 퍼뜨려 세계에 해악을 끼치려고 했다”며 “연구소 인근의 우한 시장에서 바이러스가 시작됐다는 건 연막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 폭스뉴스 외엔 미국에서 그의 주장을 받아주는 곳이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