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성·진보 운동의 거목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이 18일(현지 시각)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미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었던 그는 여성과 서민 등 소수자 인권 신장을 위한 진보적 판결로 유명했다.
이날 밤 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인파 1000여 명이 워싱턴 DC 연방대법원 앞에 모여 ‘어메이징 그레이스’ 등 추모 노래를 불렀다. 다음 날엔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꽃다발과 그의 초상화, 추모 편지 등이 대법원 계단 등 주변을 수북이 둘러쌌다. “당신은 내가 미국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했다” “당신이 우리나라에 남긴 유산에 감사한다”는 메시지들이 눈에 띄었다.
긴즈버그의 고향인 뉴욕 브루클린과 맨해튼의 뉴욕주 대법원 앞에도 19일 밤 수천명이 운집해 촛불을 들고 눈물을 흘리거나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LA에선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겠어요, 악명 높은 RBG(래퍼 BIG에 빗댄 긴즈버그의 애칭)’라고 적힌 현수막과 그의 초상화를 든 추모 행진이 이어졌다.
백악관과 의사당 등 모든 연방기관 등엔 조기(弔旗)가 게양됐고, 정파를 넘어 애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법의 거인을 잃은 것을 애도한다”고 했다. 긴즈버그는 생전에 트럼프를 “사기꾼”이라고 했고, 트럼프는 그에게 “사임하라”고 했던 사이다. 민주당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맹렬하게 모두를 위한 인권을 추구한 여성”(조 바이든), “법에 따른 평등한 정의가 모든 미국인에게 적용돼야 의미가 있다고 믿었던 사람”(버락 오바마)이라고 추모했다.
뉴욕타임스는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빈 국장 때를 방불케 하는 국가적 애도”라고 했다. 이런 추모는 대법관 한 명이 법조계를 넘어 미국 사회·문화에 얼마나 막강한 영향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
긴즈버그는 1960년대부터 인종과 성별에 따른 차별을 없애기 위한 거대한 전선을 이끌었던 법조인이다. 그가 법대 교수와 변호사로서 맡았던 소송이나, 1993년 대법관이 된 뒤 낸 판결과 의견들 하나하나가 역사적 메시지를 던졌다는 평가다.
그는 1996년 150년간 남학생만 입학시킨 ‘버지니아 군사학교’(VMI)에 학칙을 개정해 여학생을 받아들이라는 판결문을 썼다. 그는 변호사 시절에도 여군(女軍)이라 주택 수당을 못 받거나, 아버지라 자녀 보육 수당을 못 받는 사건, 남녀 임금 차별 소송 등에서 늘 소수자의 편에 섰다. 또 ‘공정과 평등’을 내세운 파격적인 소수 의견으로 사회적 논의의 흐름을 바꾸곤 했다. 이 때문에 증손자뻘인 20대도 그를 록스타처럼 떠받든다. 최근에 그의 일생을 그린 영화와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그의 모습을 담은 티셔츠와 머그컵이 불티나게 팔릴 정도였다.
긴즈버그가 이런 반열에 오른 것은 그가 진보의 아이콘이기도 했지만, 미국 사회에서 연방대법원이 차지하는 막강한 비중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의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을 합한 역할을 하는 연방대법원은 단순히 사법부 최고기관이 아니라, 미국 사회 최후의 이념추 역할을 한다. 대법관 9명은 ‘지혜의 아홉 기둥’이라 불린다. 특히 낙태나 동성애, 총기 소유 같은 전통적 종교·윤리적 이슈는 대법원이 최종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올해도 대선 우편투표 등으로 법적 논쟁이 불거질 경우 최종 심판권이 대법원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미 연방대법관은 종신직으로, 사망이나 자진 사퇴 등으로 공석이 생길 경우에만 대통령이 후임 대법관을 지명한다. 이 때문에 길어야 8년 임기인 대통령 선거는 보수 혹은 진보 대법관 임명을 위한 수단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표한 유권자 4명 중 1명(26%)이 “대통령 선택 시 가장 중요한 건 보수 대법관 임명 문제”라고 했다. 미 대법관이 종신직인 건 이런 정치적 영향에서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다. 인준 과정은 정치적이지만, 이후 대법관들은 정권 눈치를 보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른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미 대법원에 대한 존경과 승복 문화가 여기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