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거듭 한반도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미 의회에선 종전선언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의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해 거의 진전되고 있지 않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2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한 미국의 전직 관리는 “한국의 대통령이 유엔에서 미국 의회, 행정부의 입장과 이렇게 일치하지 않는 연설을 하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고도 했다.
VOA에 따르면 로 칸나 민주당 하원의원이 지난해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직전 한국전 공식 종결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현재까지 총 47명의 지지의원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미국 하원의원 총수가 435명인 것을 감안하면10% 남짓한 숫자로, 이들 대부분은 민주당 소속 좌파 의원들이다. VOA는 “여전히 (좌파 의원 중심인) 진보코커스를 넘어서 지지층을 넓히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칸나 의원은 지난해 한국전 종전선언 결의안을 의회가 매해 무조건 통과시켜야 하는 국방수권법안에 포함한 형태로 추진했지만, 결국 최종안에는 포함되지 못하고 의결이 좌절됐다. 칸나 의원은 올해도 국방수권법안에 한국전 종전선언 촉구 결의 조항과 예멘 내전 개입 중단 조항 포함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지만, 종전선언 관련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미 의원들 사이에서는 당적을 막론하고, 종전선언이 비록 정치적 선언일지라도 북한의 구체적 비핵화 조치 이후에 논의할 수 있다는 견해가 우세하다고 VOA는 밝혔다. 크리스 쿤스 민주당 상원의원은 앞서 VOA에 “북한의 비핵화에 진전이 있을 경우 종전선언을 하는 것은 완벽하게 타당하다”고 했고 댄 설리번 공화당 상원의원도 “북한이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해야 종전선언을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미 전직 고위 관리들도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필요 연설에 대해 북한의 비핵화나 한반도 평화와 아무 관련 없는 공허한 조치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고 VOA는 보도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선임보좌관 출신인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은 VOA에 “한국전쟁 종전을 선언하는 것이 완전한 비핵화의 길을 열어주지 못한다”며 종전선언은 “중국, 러시아, 북한이 유엔군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구실만 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대통령이 유엔에서 미국 의회, 행정부의 입장과 이렇게 일치하지 않는 연설을 하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며 “평화와 통일로 향하는 한 단계로서 평화조약 체결을 촉구했다면 괜찮았겠지만, 평화를 선포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라고 말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보도 “문재인 대통령이 거꾸로 알고 있는 것 같다”며 “한국전 종전 선언이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는 열쇠가 아니라, 북한 비핵화를 달성하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한국전쟁을 영구히 종식시키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한국전이 끝났다고 그저 ‘선언’할 수 없다”며, “그런 선언은 다른 조치들이 따르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가 없다”고 했다.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북핵 특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은 좋은 것이지만, 이는 핵무기 관련 사안 등 현재의 충돌 상황에 대한 해법을 향한 다른 움직임과 연계해야 한다”며 “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공식적 단계만 단독으로 취해진다면, 그런 (비핵화) 움직임의 중요성이 희석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