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경기 침체 이후 경제 회복의 혜택이 부유층에 집중되고, 저소득층은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최근 미국 재계와 학계에선 이러한 코로나 양극화를 ‘K형 경제 회복’으로 설명하는 이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K'의 맨 왼쪽 첫 획(↓)은 코로나가 세계를 휩쓴 초기 모두가 급격한 경기 침체의 충격을 겪은 것을 나타낸다. 이후 이어지는 오른쪽 위의 상승 획(↗)은 부유층과 고학력·백인·IT·금융계 등 특정 소득·업종 집단의 가파른 회복세를 보여준다. 반면 오른쪽 아래의 하락 획(↘)은 저학력·저소득층·유색인종과 관광 업계 등 집단에서 심화하는 경제난을 상징한다.
올 상반기부터 코로나 이후 경제 회복을 논할 때 경제학자들은 전통적 예측 모델, 즉 V형(침체 후 급반등)과 U형(침체 장기화 뒤 반등), L형(침체 장기화) 중 어느 것이 될지 고민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어느 것도 들어맞지 않았다. 기존의 회복 예측 모델로 설명할 수 없는 대표적인 현상이 뉴욕 증시와 실물 경제의 철저한 괴리였다.
현재 뉴욕 증시는 코로나 사태의 손실을 상쇄하고 남을 정도로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아마존·페이스북·구글 같은 대형 기술주의 견인 덕에 나스닥지수는 연초보다 25%가량 올랐다. 연말을 앞두고 부유층의 고급 소비재 수요도 늘었다. 반면 지난해까지 완전고용(3%대)에 가까웠던 미 실업률은 16%까지 올랐다. 뉴욕·LA 등 대도시에선 집세를 못내 쫓겨나거나 푸드뱅크(식량 보급소)에 줄을 서는 사람들이 전례 없이 폭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5일(현지 시각) K형 경제 회복이 함의하는 ‘부익부 빈익빈’을 이렇게 설명했다. 코로나 봉쇄에도 집에서 근무하거나 자산을 관리할 수 있는 정보통신·금융·관리 업종에 종사하는 화이트칼라는 처음부터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소유한 주택 가치는 올라갔고, 경기 부양을 위한 제로 금리 덕에 모기지(주택 대출) 상환 부담은 줄었다. 또 외식·여행 등 고비용 소비가 코로나로 막히면서 저축 잔고는 사상 최고치로 늘었다. 이들의 코로나 시대 생활을 떠받치는 업종, 즉 화상회의와 소셜미디어, 음식 배달과 주택 관리 업계의 주가는 상승했고, 이런 주식을 갖고 있던 덕에 금융 자산도 불었다.
반면 이들 외 많은 집단은 소득 급감으로 교육·의료 서비스에서 누락되면서 재기의 발판도 없어지는 악순환을 경험하고 있다. 대면 근로가 필수였던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코로나 경제 봉쇄로 대거 실직했다. 특히 고졸 이하 저학력층과 흑인·히스패닉 등 유색인종, 여성 등 요식업·소매업·관광 업계 근간을 떠받쳤던 이들은 앞으로도 일자리를 회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주택·주식 소유율도 낮아 자산 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도 없다.
숫자로도 드러난다. 미 노동부가 25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달 현재 고교 중퇴 이하 취업자 수는 2월보다 18% 줄었다. 반면 대졸 이상 취업자 수는 2월보다 0.6% 감소해 코로나 충격을 거의 극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가 가져온 이런 심각한 양극화는, 1930년대 대공황처럼 모두 다같이 겪는 경제 침체보다도 더 큰 사회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워드대 경제학과 윌리엄 스프릭스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불평등 심화는 경제 기반을 언제든 붕괴시킬 수 있다”고 했다.
K형 회복은 미국 정치권에서도 본격 이슈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미 대통령 후보 TV 토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증시 호황을 내세워 “경제가 V형 회복 중”이라고 하자,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서민층 경제 직격탄을 감안하면 K형 회복이 맞는다”고 했다. 트럼프 경제 호황은 월스트리트 증권가와 극소수 부유층에만 해당된다고 공박한 것이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5일 “트럼프 대통령 지지 기반이었던 중서부 경합주의 저학력 노동자들이 이 K형 회복의 아랫도리를 차지하면서, 트럼프에게 등을 돌리느냐가 대선 향방을 가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