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봄, 중국 광저우의 아파트에 살던 미국 대사관 직원 마크 렌지와 그의 가족은 밤마다 위층에서 돌이 쪼개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음에 몇 달간 시달렸다. 어지럼증과 불면증, 두통, 메슥거림, 기억력 감퇴가 이어졌다. 어린 자녀들은 자다가 코피를 흘리며 깨어나 구토하기도 했다.
이들은 처음에 ‘광저우의 극심한 대기오염 때문인가’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렌지는 바로 옆집에 사는 미 상무부 소속 재경관 캐서린 워너도 똑같은 증세를 겪은 걸 알게 됐다. 공군 출신인 워너의 어머니가 미국에서 날아와 특수 장비로 검사해봤더니, 이들의 아파트에서 ‘극초단파(microwave)’가 대량 검출됐다. 이런 식으로 광저우와 상하이의 미 외교관과 가족 15명이 극초단파 공격에 시달리다 본국으로 철수했다.
이는 뉴욕타임스(NYT)가 극초단파 피해자들과 이들이 치료를 받아온 펜실베이니아대 뇌손상치료센터 의료진, 그리고 이 사건을 조사 중인 하원의회와 연방 특별조사국(OSC), 미 국립과학원을 인용해 21일(현지 시각) 보도한 내용이다.
러시아와 중국 등은 5~6년 전부터 극초단파로 사람의 뇌를 노린 ‘음파 무기’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극초단파의 주파수가 워낙 촘촘해 철제와 콘크리트도 뚫을 수 있어 외부에서 몰래 공격할 수 있으며, 사람의 귀를 거치지 않고 바로 측두엽에 전달돼 뇌 신경을 손상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피해자들이 진술한 ‘금속 긁는 소리’ ‘벌레 우는 소리’ ‘돌 깨지는 소리’는 실제 소리가 아니라 뇌가 소리로 인식한 극초단파로 추정된다.
극초단파 공격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앞서 2016~2017년 남미 사회주의 국가 쿠바 수도 아바나에 주재하던 미국과 캐나다 외교관과 가족 40여명도 비슷한 공격을 받았다. 처음엔 원인을 알 수 없는 이명과 구토, 두통, 환각 등을 통틀어 ‘아바나 신드롬’ 괴질로 불렀지만, 1년여 뒤에야 극초단파 공격임이 드러났다.
이는 오바마 정권에서 이뤄진 미국과 쿠바의 관계 개선을 우려한 러시아나 러시아와 연계된 쿠바인들의 소행으로 미 정보기관은 파악했다. 비슷한 시기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도 미 중앙정보부(CIA) 요원이 호텔에서 같은 증세를 겪은 사실이 보고되면서 ‘러시아 배후설’이 굳어졌다.
2018년 광저우·상하이의 극초단파 공격은 2017년 ‘아바나 공격’과 외교적으로 비슷한 맥락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미 의회는 보고 있다. 2018년 봄은 아직 임기 초반인 트럼프 정부와 중국의 관계가 좋을 때였다. 미국이 중국과의 새로운 무역 협상, 그리고 북핵 협상에서 중국의 협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런 미·중 밀착을 경계한 러시아가 미·중 무역 협상에 관여하던 미 외교관들을 몰래 공격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상황은 비슷한데 미국의 대응은 달랐다. 2017년 트럼프 정부는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미국 내 쿠바 외교관들을 추방하고, 피해 외교관들은 산재 판정을 해줘 예산으로 치료를 받게 했다. NYT는 ‘오바마 정권의 유산은 다 뒤집는다’는 트럼프 정부 기조에 따라 쿠바에 대해선 강력한 보복이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반면 이듬해 비슷한 사건이 중국에서 일어나자 국무부는 사건 조사조차 하지 않은 채 은폐했고, 의회 차원 조사에도 협조하지 않았다. 광저우 외교관들의 심각한 피해도 ‘개인 건강 문제’로 치부, 각자 연차와 무급 병가를 쓰게 하고 치료비도 지원하지 않았다고 NYT는 전했다. 미국 정부가 쿠바 때와 달리 대응한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부 외교관은 미 정부에 산재 처리 소송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