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국경을 접한 멕시코 북부에서 발발한 ‘물 분쟁’이 일단 봉합됐다. 그간 두 나라가 각각 국경 하천을 통해 물을 교환해 왔는데, 멕시코가 올해 약속한 양의 물을 흘려보내 주지 못하자 미국이 봐 준 것이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22일(현지 시각) 기자회견을 열고 “어제 미국 측과 물과 관련한 매우 중요한 합의에 서명했다”며 “미국의 이해와 연대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두 나라의 물 주고받기 역사는 1944년 체결한 ‘물 교환 협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 세계대전 중 양국은 국경 지역 하천 물을 두고 갈등을 벌이다가 미국은 유역 대부분이 자국에 속해 있는 콜로라도강에서 매년 19억㎥의 물을 멕시코로 보내기로 했다. 대신 멕시코는 리오그란데강에서 한 해에 물 4억3000만㎥씩을 미국으로 보내기로 했다. 리오그란데강은 유량의 대부분이 멕시코 쪽에서 유입되기 때문이다.
5년 만에 돌아오는 최종 정산일인 24일을 앞두고 멕시코는 미국에 보내야 하는 양을 맞추지 못했다. 물을 흘려보내야 하는 치와와주를 비롯한 멕시코 북부 지방의 혹독한 가뭄 때문이다. 지난달 멕시코 국경 농민들은 물 방류를 저지하기 위해 라보키야댐 등 치와와주 내 댐들을 점거하고 정부군과 대치했다. 진압 과정에서 여성 1명이 국가방위대의 총에 맞아 숨지기도 했다.
물 부족 호소가 이어졌지만 멕시코 정부는 그간 방류 입장을 고수했다. 미국에 ‘물 빚’을 제대로 못 갚을 경우 미국이 관세 부과 등으로 보복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워싱턴포스트는 “정부가 (부족한 물량을 채우기 위해) 폭풍이나 허리케인만을 바라는 전략을 써 왔다”고 지적했다. 결국 정산일을 며칠 앞두고서야 멕시코가 자국 내 다른 지역에서 물을 끌어다 할당량을 채울 수 있도록 미국이 한발 양보해 줬다.
급한 불은 껐지만 분쟁은 언제라도 재연될 수 있다. 76년 전 체결된 양국의 물 협약은 기후변화로 가뭄이 잦아지는 최근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 더구나 1994년에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멕시코 국경 지대에서 목화·옥수수·토마토 등 미국 수출용 농작물 재배가 급증하면서 멕시코 내 농업용수 사용이 급격히 늘었다. 미 포린폴리시는 “인구 증가와 기후변화로 인해 필수 자원에 대한 경쟁이 증가하고 있다”며 “이번 갈등이 다가올 물 분쟁의 예고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