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 24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 7번가의 대형 실내경기장 메디슨스퀘어가든에 마련된 대선 사전 현장투표소. 입구 양옆으로 늘어선 유권자 수만명의 행렬이 굽이굽이 약 3㎞ 이어졌다.
대부분 마스크를 쓴 모습이었다. 간이 의자에 앉거나 지팡이 짚은 노인들, 유모차에 태운 아기 기저귀를 가는 젊은 부부도 눈에 띄었다. 일부 사람들은 샌드위치, 도넛을 꺼내 선 채 점심을 먹기도 했다. 기표소가 15개뿐이라 3~4시간씩 기다려야 하는데도 불평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날은 뉴욕주 전역에서 사상 첫 대선 사전 현장투표가 시작된 날이었다. 뉴욕에선 그간 사전 우편투표, 대선 당일 현장투표 등 두 가지 투표 방법뿐이었는데 올해 사전 현장투표가 처음 도입됐다. 11월 3일 선거 당일 혼잡이 예상되는 투표소의 코로나 감염도 피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공격하는 우편투표의 위험도 피할 제3의 옵션에 유권자가 확 몰린 것이다.
유권자들은 ‘우편투표에 과부하가 걸릴까 봐 걱정돼서 나왔다’고 입을 모았다. 맨해튼 토박이라는 백인 여성 제인(67)은 “평생 선거 당일 투표를 해왔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일찍 나왔다”며 “이 선거는 내 생애 가장 중요한 투표라,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을 택했다”고 했다. 이날 4시간 줄을 섰다는 한스(41)라는 백인 남성은 “항상 우편투표만 해왔지만 이번엔 내 표가 만에 하나 사표(死票)가 될까 봐 걱정됐다”고 했다. 흑인 남성 앨릭스(30)도 “온갖 우편투표 논란에 신물이 난다”며 “우편투표밖에 할 수 없는 이들 말고 나 같은 사람은 불편하더라도 현장투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실 뉴욕은 대선 투표율이 높아도 전체 결과에 변수는 안 되는 곳이다. 민주당 지지 유권자가 80%가 넘어 이들의 선택은 정해져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 미국 최대 도시의 사전투표 열기가 중요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편투표 공격을 위해 예의주시하는 곳이 바로 뉴욕이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큰 피해를 입은 뉴욕은 지난 6월 양당 대선 경선을 100% 우편투표로 실시했다가 몇 주간 개표·집계가 마비되다시피 했다. 9월엔 대선 본선 우편투표가 시작되자 투표지 10만장이 잘못 발송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자 트럼프는 고향인 뉴욕의 사례를 들어 “우편투표는 사기” “대선 개표에 몇 달이 걸릴 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지지층이 많이 하는 우편투표를 공격해 대선 패배 시 불복할 근거를 만든다는 논란을 낳았다.
이 때문에 뉴욕에서 또다시 우편투표로 작은 시비라도 붙을 경우, 미국 전체 투표 결과가 공격당할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가 커졌다. 이런 우려는 뉴욕뿐 아니라 LA·시카고 등 대도시와 펜실베이니아·플로리다 등 경합주, 텍사스·조지아 등 판세가 요동치는 주들을 중심으로 사전 현장투표장에 엄청난 인파가 쏟아져 나오는 배경이 되고 있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투표 열기에 놀란 트럼프 지지자들의 투표도 함께 껑충 뛰고 있다.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24일 “최대 경합주인 플로리다의 공화당원들이 참호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면서, 공화당의 사전 현장투표율이 민주당을 무섭게 따라잡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요인이 겹쳐 대선을 열흘 앞둔 24일 현재 미국의 누적 사전투표(사전 우편투표+사전 현장투표)는 5600만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 중이다. 미 선거 정보를 제공하는 민간 단체 ‘미국 선거 프로젝트’는 23일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대선 전체 투표율이 65%를 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6년 대선 투표율이 55%였는데 10%포인트 이상 오른다는 얘기다. 이 경우 1908년 이후 112년 만에 가장 높은 투표율이 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봉쇄 속에서 대선 투표율이 기록을 깨는 아이러니가 벌어질지, 또 높은 사전 투표율은 누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