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남부 ‘선벨트(북위 37도 이남의 일조량이 많은 주들)’의 최대 경합주인 플로리다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를 27일(현지 시각) 여론조사 평균에서 앞섰다. 본격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4월 이후 처음이다. 미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선벨트’의 집토끼들이 뭉치면서 트럼프가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는 4년 전 대선에서도 막판까지 플로리다에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밀리다 1.2%포인트 차로 이기면서 대선 승기를 잡았다. 플로리다는 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노스캐롤라이나·애리조나 등 6개 경합주 중 선거인단(29명)이 가장 많다.
이날 정치 분석 매체 리얼클리어폴리틱스의 각종 여론조사 평균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 4월 이후 처음으로 플로리다에서 바이든을 0.4%포인트 차로 앞섰다. 지난 13일만 해도 바이든이 3.7%포인트 앞섰는데 트럼프가 2주 만에 4%포인트 넘게 치고 올라간 것이다.
이는 트럼프가 바이든 등 민주당 진영을 “사회주의자”라고 공격하는 것이 먹혀들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플로리다에는 공산주의를 피해 도망 나온 쿠바계와 베네수엘라계 히스패닉들이 많은데, 이들이 트럼프를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쿠바 이민자들이 자신들을 ‘트럼프식 공화당 지지자’로 규정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플로리다와 함께 남부 ‘선벨트’의 주요 경합주인 노스캐롤라이나(15명)에서도 트럼프가 0.7%포인트까지 바이든을 따라잡았고, 애리조나(11명)에서도 격차를 2.4%포인트까지 좁혔다. ‘선벨트’ 전역에서 트럼프 지지층이 결집하고 있는 것이다.
플로리다의 역전은 트럼프에게 ’2016년식 대역전극'의 발판을 만들어줄 수 있다. 미 대선은 전국 득표가 아니라 주(州)별 승자 독식 방식의 선거인단 확보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주별 선거에서 이겨 각 주에 걸린 총 538명의 선거인단 중 과반인 270명을 확보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플로리다는 전통적으로 미 대선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 1996년 이후 플로리다에서 이긴 사람이 계속 대통령이 됐다. 2000년 대선에선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전국적으로 54만여 표를 더 얻고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게 플로리다에서 단 537표 뒤져 백악관 입성에 실패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플로리다에서 승리해 선거인단 수 271명으로 대통령이 됐다. 플로리다의 537표가 세계 초강대국의 지도자를 선택한 셈이다.
현재 미 50주의 각 주 여론조사 평균치를 개표 결과로 가정하고 선거인단을 나눠보면, 트럼프는 플로리다(29명)를 이긴다는 가정하에 227명을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가 막판 역전극으로 노스캐롤라이나와 애리조나에 걸린 선거인단 26명을 가져가면 트럼프의 선거인단 수는 253명으로 늘어난다. 대통령이 되기 위한 매직 넘버 ‘선거인단 270명’에 17명이 모자란다. 이 경우 ‘선벨트’와 함께 대표적인 경합 지역인 러스트벨트(쇠락한 북동부 공업지대)의 펜실베이니아(20명)만 가져오면 트럼프는 재선에 성공할 수 있다. 트럼프 입장에선 플로리다를 반드시 이겨야 역전이 가능한 셈이다.
하지만 2016년과 같은 트럼프의 막판 대역전극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많다. 트럼프는 현재 리얼클리어폴리틱스 기준 전국 지지율 평균에서 바이든에게 7.1%포인트 차로 밀리고 있다.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대선 일주일을 앞두고 2.2%포인트 차로 트럼프에게 따라잡혔고, 대선 5일 전엔 격차가 1.3%포인트로 좁혀지는 초경합 상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바이든의 경우는 여전히 7%대의 비교적 큰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부동층이 4년 전엔 11% 정도였지만, 올 대선에서 3%로 크게 줄었다. 현 시점에선 부동층이 모조리 트럼프를 찍어도 역전하기가 힘들다는 의미다.
패트릭 머리 몬머스대 여론조사연구소장은 의회 전문 매체 더힐에 “4년 전보다 (여론조사에서) 유권자들의 변동성이 덜하다”며 “지난번과 같은 후보들의 지지율 격차 감소가 이번엔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