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측은 대선 다음 날인 4일(현지 시각) 경합주인 위스콘신의 재검표를 요청하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조지아에서 개표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주의 일심법원에서 시작된 소송전이 연방대법원까지 이어지게 되면, 미국 사회가 장기간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측이 문제 삼은 4곳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리한 시골 지역의 현장 투표부터 개표가 이뤄지면서 개표 초반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나갔던 지역이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게 유리한 우편투표가 개표되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이 중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는 선거 관리를 총괄하는 주지사가 민주당 소속이다.
트럼프 측은 우선 "위스콘신주 여러 카운티에서 결과의 유효성에 대한 심각한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불규칙성이 보고됐다”며 재검표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위스콘신은 개표가 98% 이상 마무리된 상황에서 바이든이 트럼프보다 0.6%포인트 앞섰다. 위스콘신주 규정에 따라 두 후보의 차이가 1%포인트 이하일 때 2위인 후보는 선관위에 재검표를 요청할 수 있다. 재검표 관련 규정에 따라 미 언론은 11월 17일 무렵 절차가 시작돼서 12월 전에 끝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2만표가 넘는 차이가 뒤집힐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재검표는 여러 선례가 있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맞붙었던 2000년 대선이 가장 유명하다. 당시 승패를 가른 플로리다주에서 두 후보의 표 차이는 1784표밖에 나지 않았다. 이에 민주당은 그중 팜비치를 포함한 4개 카운티에서 수작업 재검표를 요구했고, 양측의 차이는 327표로 줄어들었다. 그러자 공화당 소속이자 부시 대통령의 동생인 젭 부시가 주지사로 있던 플로리다주는 개표 결과 공식 보고에 시한(時限)을 두어 재검표를 중단시키려 했다. 이에 고어 측은 플로리다주 항소법원과 대법원에 잇따라 소송을 내서 시한 없이 주내 모든 카운티에서 수작업 재검표를 하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부시 측은 연방대법원에 항소했고, 보수적 대법관들이 부시 편을 들어 재검표를 중단시켰다. 최종적으로 두 후보의 표차는 537표로 결론 났다. 고어는 결국 선거 37일 만에 패배를 공식 인정했다. 양측의 법적 공방이 길어져 한 달 넘게 대선 승자를 확정하지 못한 것이다.
트럼프가 미시간·펜실베이니아·조지아에서 잇따라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처럼 대선 결과가 연방대법원에서 결정될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트럼프가 지명한 에이미 코니 배럿 연방대법관이 취임해 현재 연방대법원은 보수 6 대 진보 3의 구도다. 연방대법관 9명 중 3명이 트럼프가 임명한 사람이다.
트럼프 측은 미시간주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공화당 참관인의) 의미 있는 접근이 허용될 때까지” 개표를 일시 중단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두 주는 “절차에 문제가 없다”며 개표를 계속하고 있다. 트럼프는 또 선거 당일 소인만 있으면 선거 후 사흘 내로 도착한 우편투표를 모두 인정해주는 펜실베이니아주 규정에 대해서도 연방대법원에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방침이다. 트럼프 측은 조지아주에서도 선거 당일인 3일 저녁 7시까지 도착한 우편투표만 개표하게 돼 있는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우선 민주당 성향이 강한 채텀카운티 선관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10여 카운티를 대상으로 추가 소송도 할 방침이다.
소송전이 장기화할 전망이 보이면서 트럼프·바이든 양측 모두 소송 비용 마련을 위한 모금을 시작했다. 트럼프 캠프는 이날 지지자들에게 이메일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 “우리가 선거 결과를 수호할 자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하다”며 기부를 요청했다. 바이든 캠프도 “우리는 엄청난 법률적 작업을 해야 한다. ‘바이든 파이트 펀드’에 기부해 달라”고 지지자들에게 요청하고 나섰다.
소송전이 장기화하면 최악의 경우 새 대통령이 제때 취임 못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헌법에 따라 대통령·부통령 임기는 내년 1월 20일 정오에 무조건 종료된다. 만약 그때까지 대통령·부통령이 확정되지 못하면 헌법상 승계 서열 2위인 하원의장이 의장직을 사임하고 대통령직을 대행하는 미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