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의 존 매케인(오른쪽) 상원의원과 조 바이든 전 부통령.

3일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승기를 잡을 수 있게 한 일등 공신은 선거인단 11명을 가진 서부 격전지 애리조나다. 애리조나에선 5일 개표가 86% 이뤄진 현재 바이든이 2.4%포인트(7만여표) 더 득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이긴 주(州) 중 바이든이 탈환한 곳은 지금까지 미시간과 위스콘신, 애리조나 세 곳이다. 미시간·위스콘신이 전통적 민주당 텃밭인 반면, 애리조나는 ‘신(神)과 총의 주’로 불릴 만큼 보수적인 공화당 텃밭이다. 애리조나가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택한 건 1996년 이후 24년 만이다.

이 이변은 애리조나에서 6선(選) 상원의원을 지내고 2008년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던 거물 고(故) 존 매케인 의원을 빼곤 설명되지 않는다. 매케인은 베트남전 전쟁 영웅으로, 신념과 원칙에 충실해 정파를 초월해 존경받았다. 바이든과도 의정 생활을 함께하며 우정을 나눴다.

매케인은 트럼프의 분열적 언행을 비판하며 보수 진영 내 반(反)트럼프 구심점 역할을 했다. 트럼프는 그를 “해군사관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멍청이” “베트남 포로로 잡혔던 패배자”라고 했다. 트럼프는 2018년 뇌종양을 앓던 매케인이 오바마케어(전 국민 건강보험) 폐지에 반대하자 “어차피 죽을 사람”이라는 막말을 했고, 매케인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다.

고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아내 신디 매케인. 그의 바이든 지지 선언으로 공화당 텃밭 애리조나의 판세가 돌아섰다.

이번 대선에서 매케인의 아내 신디와 딸 메건은 “바이든은 훌륭하고 정직한 사람”이라며 공개 지지했다. 신디는 TV 광고에 출연하고 바이든의 정권인수 자문단에도 들어갔다. 매케인 가문의 영향력이 막강한 애리조나의 판세가 요동쳤다. 매케인의 한 참모는 4일 언론 인터뷰에서 “바이든의 애리조나 승리는 트럼프에 대한 매케인 의원의 마지막 복수”라고 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의 패색이 짙어지자 트럼프 지지자들은 신디 매케인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했다. 보수 논객인 마크 레빈이 4일 “신디 메케인에게 축하한다. (당신 때문에) 우리는 애리조나를 비용으로 치르게 됐다"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리자, 다른 지지자 2만여명이 신디에게 “배신자” 당장 탈당하라"는 분노의 댓글을 쏟아냈다.

이번에 애리조나뿐 아니라 남부의 ‘바이블 벨트(기독교 세가 강한 보수 지역)’가 여럿 흔들렸다. 노스캐롤라이나와 조지아, 텍사스는 트럼프가 4년 전 낙승했지만 바이든의 맹추격을 받았다. 이 지역에 최근 유색인종과 진보 성향 인구의 유입이 증가한 것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등 정통 보수층 일부가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은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