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당선인이 7일 밤(현지시각) 델라웨어 윌밍턴에서 승리를 확인하는 연설을 한 뒤, 이어 무대에 선 가족 중 단연 눈에 띄는 건 부인 질 바이든(69) 여사였다. 화려한 꽃무늬 드레스에 분홍색 힐 차림의 바이든 여사는 두 팔을 번쩍 치켜들며 나왔다. 그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수많은 지지자들 중 화답해야 할 쪽을 먼저 안내하는 듯한 제스처도 취했다.
이 장면은 이 미래의 퍼스트레이디가 바이든 당선자에게 어떤 의미와 영향력을 끼치는 지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바이든 여사는 남편을 충실히 내조하는 미국의 전통적인 ‘내조형’ 퍼스트레이디의 이미지도 가졌지만, 그간 남편의 선거 캠페인부터 인사와 정책 수립에 전방위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참모형’의 면모를 두루 보여줬다.
바이든 당선자는 평소 부인을 두고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라고 했고, 미 언론들도 바이든 여사를 “바이든의 최종 병기”라고 표현한다. 미 정가에선 “질 바이든은 적극적으로 정권에 간여했던 힐러리 클린턴, 그리고 착실한 아내로서 국민의 사랑을 받은 엘리너 루스벨트를 합쳐놓은 듯한 독특한 퍼스트레이디가 될 것”이란 말이 나온다. 그동안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해온 현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트럼프(50)와도 확연히 대조될 전망이다.
질 바이든은 지난 1977년 상처(喪妻) 뒤 홀로 두 아들을 키우고 있던 8세 연상의 조 바이든 상원의원과 결혼했다. 질 역시 재혼이었다. 바이든 자서전에 따르면, 두 사람이 사귀고 있을 당시 6세·7세였던 아들들이 “우리가 질하고 결혼해야겠어요”라고 아버지에게 조를 정도로 전처 자식들도 질과 관계가 좋았다고 한다. 질은 4년 뒤 딸 애슐리를 낳았다.
바이든 여사는 영어 교사 출신이다. 장애아 대상 특수 언어교육이 전문 분야다. 결혼 후 델라웨어대에서 박사 학위를 땄고, 줄곧 고교·대학에서 강의해왔다. 그는 현재 버지니아 노던 커뮤니티 칼리지의 영어과 교수로, 지난 2009~2017년 세컨드레이디(부통령 부인) 시절에도 “나만의 영역을 갖는 게 중요하다”며 학교 일을 계속했다. 남편의 출장을 따라 에어포스투를 타고 다니면서도 시험지 채점을 했던 일화가 유명하다.
이번 대선 캠페인을 위해 40여년만에 처음으로 휴직했다는 그는, 지난 8월 언론 인터뷰에서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돼도 난 가르치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현실화된다면 사상 처음 별도의 직업을 갖고 일하는 미 퍼스트레이디를 보게 된다.
바이든 여사는 그간 바이든 캠프 운영의 핵심이기도 했다. CNN은 “질이 카멀라 해리스를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선택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전했다. 러닝메이트 후보군과 함께 대선자금 모금 행사를 열거나, 장관 후보들과 정책 간담회도 열면서 남편에게 인사 조언을 했다는 것이다. 교원 노조 출신인 질은 “바이든 정부에선 교육자 출신이 교육 장관이 될 것이다. 더 이상 벳시 디보스(트럼프 정부의 정치인 교육 장관)는 없다”고 공개 선언하기도 했다.
바이든 여사의 정치력과 활동 범위는 웬만한 정치인 뺨친다. 그는 올초 민주당 경선 때부터 아이오와·뉴햄프셔 등 주요 경선 지역을 홀로 찾아 유권자들에게 “당신이 누구를 좋아하는 지가 아니라, 누가 트럼프를 이길 수 있을 지 따져보라”고 호소했다. 이번에 바이든에게 기적같은 승리를 안겨준 조지아·애리조나 같은 남부 공화당 텃밭도 질 바이든 혼자 유세 출격했던 곳들이다.
지난해 바이든 당선자가 여성들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한다는 논란이 일 땐 바이든 여사가 나서 “사람들이 남편에게 얼마나 많이 접근하는지 아느냐. 그는 선을 잘 긋지 못할 뿐”이라고 방어했다. 바이든 여사는 트럼프 대통령 측이 차남 헌터 바이든의 부패 의혹을 들추면 “트럼프 당신의 상대는 조 바이든이다. 가족은 건드리지 말라”고 하고, 바이든의 고령을 거론하면 “바이든(77세)이나 트럼프(74세)나 비슷하게 늙지 않았나?”라고 일갈했다. 직접 아동용 ‘바이든 전기’를 펴내기도 했다.
특히 지난 3월 경선 당시 LA에서 바이든이 연설을 하던 연단에 시위자 2 명이 뛰어오르자, 질이 남편의 손을 잡은 채 한 손으로 번개같이 이들을 차례로 밀쳐내 격퇴한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