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국제정치 석학이자 글로벌 위기 컨설팅 회사인 유라시아 그룹 회장인 이언 브레머 회장. 트럼프의 대외 정책을 '아메리카 퍼스트'로 최초로 명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유라시아 그룹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막을 내리고 조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 지난 4년간 혼란을 겪었던 미국 사회와 국제 질서는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미국의 글로벌 위기 컨설팅 회사 유라시아 그룹의 이언 브레머(51) 회장은 14일(현지 시각) 본지 인터뷰에서 “바이든의 미국은, 미국의 지난 50년보다 지난 4년에 가까울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트럼프 시대의 분열과 미국 리더십 실종 여파가 길게 갈 것이란 이야기다. 그는 “미·중 갈등은 돌이킬 수 없고, 바이든은 러시아에도 여러 제재를 가할 것”이라며 “내년엔 미국과 사회주의 진영 간에 냉전 이래 최대 갈등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브레머는 ‘우리 대 그들’ ‘리더가 사라진 세계’ 같은 저서를 통해 국제 정치의 조류를 선도적으로 해석해온 학자로, 뉴욕대·컬럼비아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2016년 트럼프의 대외 정책을 학계 전통적 개념인 ‘미국 고립주의’ 대신 ‘미국 우선주의’로 처음 명명한 것도 그였다. 작고한 부친은 한국전 참전용사였다.

- 트럼프의 대선 불복 여파는 얼마나 갈까.

“트럼프는 끝까지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그의 삶이기 때문이다. ‘선거가 조작됐다’는 주장은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며, 체제 공격이 트럼프주의의 핵심이다. 그로 인한 국가적 리스크가 장기화될 것이다. 공화당 지지자 4명 중 3명이 ‘이번 선거가 공정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국민이 수천만명이란 얘기다.”

- 바이든의 국정 운영이 힘들어지나.

“그렇다. 바이든이 임기 초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될 것이다. 일단 그가 약속한 ‘통합’이 실현되기엔 미국은 너무 분열돼 있다. 연방 상원에서 공화당이 다수당 지위를 유지해 바이든의 핵심 정책 추진을 막을 것이다. 오히려 바이든은 국외에선 동맹들의 전폭적 지지 속에 운신의 폭이 국내보단 훨씬 넓을 것이다. 그의 가장 큰 성과는 주로 유럽 동맹과의 협력을 통한 기후변화 대응, 코로나 백신 공동 공급 등 대외 정책에서 나올 것이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이 2014년 3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5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14일 본지 인터뷰에서 “내년에 미국과 사회주의 진영 간에 냉전 이래 최대 갈등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오종찬 기자

- 바이든의 미국이 이끄는 세계는 평화로워지나.

“스타일은 평화롭겠지만 실질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선 미·중 갈등은 돌이킬 수 없는 조류가 됐다. 바이든은 트럼프도 차마 못 한 ‘중국은 깡패(thug)’란 말을 한 사람이다. 대만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간) 군사 갈등, 미·중 기술 패권 전쟁, 중국 인권 문제 우려가 줄어들 가능성은 없다. 바이든은 트럼프의 뒤를 봐준 러시아에도 여러 차원의 제재를 가할 것이다.”

- 바이든의 아시아 정책 전망은.

“오바마 정부 때와 같은 ‘아시아로의 회귀’가 되겠지만, 오바마와는 전혀 다르고 오히려 트럼프 정부에 가까울 것이다. 미국은 현재 국내 복지·경제 관련 예산 압박이 너무 커 군비를 확대할 수 없다. 트럼프의 미군 철수 등 군사 불개입주의는 트럼프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고 미국의 구조적 문제다. 바이든이 와도 미국은 과거와 같은 리더십을 회복하기 힘들다.”

- 중국은 바이든을 반기나, 두려워하나.

“중국 공산당 내에서도 분위기가 둘로 나뉜다. 경제 분야의 실용중도파 테크노크라트들은 글로벌 안정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안심하고, 군사 분야 강경파들은 미국 입지를 약화시킨 트럼프 시대의 반사이익을 누렸던 이들이라 불안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불필요하게 냄비 속을 휘젓지 않고 신중하게 행동할 것이다.”

- 북한은 어떻게 나올까.

“바이든 당선에 가장 혼란스러워할 나라가 북한이다. 북한은 트럼프와 관계는 최상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얻어낸 게 없어 불만이 팽배했다. 바이든 정부 출범이 자신들에게 이익일지, (바이든 정부가) 자기들에게 얼마나 관심 있을지 궁금하고 초조할 것이다. 빠르면 바이든 취임 전 인수위 기간에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무력 도발로 어떻게든 헤드라인을 만들어 그(바이든)를 떠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