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3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 선거 문제를 제기하며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의 ‘중국 때리기’가 점입가경이다.
이달 9일 미국 재무부는 홍콩 내 인권 탄압 혐의로 덩중화(鄧中華)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 부주임 등 중국 관료 4명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이들 4명은 미국 여행이 금지되고 미국 내 모든 자산이 동결된다. 사흘 후인 12일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군(軍)의 소유이거나 통제를 받는 31개 중국 기업에 대한 미국 투자회사와 연기금의 투자 및 주식 소유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세계 최대 감시 폐쇄회로(CCTV) 카메라 회사인 ‘하이크비전’, 서버 기업 ‘인스퍼’ 등을 포함해 해당된 중국 기업 모두가 중국 인민해방군 현대화에 적극 가담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달 20일에는 키스 크라크 국무부 경제차관 주도로 대만과 ‘경제번영 파트너십 대화’를 열어 중국이 미·중 외교의 근간으로 꼽는 ‘하나의 중국 원칙(One China Policy·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인정)’을 다시 무력화하며 중국을 자극할 예정이다. 중국은 이에 대해 “내정 간섭”(왕원빈 외교부 대변인), “패배한 집권 세력의 마지막 광기”(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 논평)라며 맹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으로선 트럼프의 현재 임기 만료시점(내년 1월19일)까지 9주일 동안 계속 긴장할 수 밖에 없다. 중국과 40년 넘는 인연을 지닌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당선 선언에도 불구하고,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금까지 축하 인사를 못하고 있는 게 이를 보여준다.
대통령이 되기 전 70년 동안 어떤 공직(公職)도 맡은 적 없는 자칭 ‘아웃사이더’ 트럼프 대통령은 왜 이렇게 임기 마지막 순간까지 ‘중국 때리기’에 목숨 걸고 있을까. 4가지 측면에서 그 이유를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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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대선용 전술 아닌 ‘정치적 신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7월 중국의 대미 수출품 500억달러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시작으로 무역 전쟁을 점화했다. 이어 ZTE, 화웨이, 틱톡 등 중국 첨단 기업 제재와 휴스턴 소재 중국 총영사관 폐쇄 같은 미국 역대 행정부가 엄두 조차 내지 못한 대중 압박·봉쇄 조치를 가했다.
일각에선 그의 중국 때리기가 ‘재선을 위한 일시적인 대선용 전술’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그가 쓴 저작들을 보면 트럼프의 중국관은 흔들림없는 ‘정치적 신념’에 가깝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2015년 낸 <트럼프, 강한 미국을 꿈꾸다(2017년 번역), 원제목은 Time to Get Tough>에 나오는 구절이다.
“중국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막강하다. 2027년쯤이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다. (중략)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은 중국 때문에 240만개의 일자리를 잃었다. 지난 30년 동안 중국 경제는 매년 9~10%의 성장률을 기록한 반면, 미국은 전례없는 하락세를 경험했다. 2011년 1분기에만 중국 경제는 9.7%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미국 경제는 1.9%에 그쳤다.”<강한 미국을 꿈꾸다, 48~49쪽>
그는 이어 말했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우리를 대하고 있으나 중국은 절대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나는 그동안 중국을 우리의 적(敵)이라고 규정했다. (중략) 미국이 다시 1등 국가가 되려면 더는 우리를 가지고 놀지 못하도록 중국에 강경하게 나갈 수 있는 사람, 또 중국의 술수에 휘둘리지 않는 단호하고도 능수능란한 협상력을 지닌 사람이 필요하다.”<같은 책, 8~9쪽>
트럼프 대통령은 “(8년 동안) 미국을 이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명분에 사로잡힌 채 무능한 협상력으로 미국의 국가이익을 못 챙겼다”고 지적한다. 이로 인해 중국의 미국 추월은 시간문제가 됐고, 미국은 세계 각국의 호구(虎口·어수룩하게 이용만 당하는 사람 또는 국가)가 됐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 견제와 때리기’는 트럼프가 정치 활동을 하는 이유이자, 목표라고 볼 수 있다.
반면 40여년간 중국과 인연을 맺어온 바이든은 2000년 이후에만도 연방상원의원(2001년)과 부통령 시절(2011년, 2013년) 등 세번에 걸쳐 방중(訪中)했다. 그는 2011년 8월17일부터 6일간 중국에 머물 때, 시진핑 당시 국가부주석과 수일간 시간을 함께 하며 친분을 쌓아 중국의 '오랜 친구(老朋友)’로 불린다.
◇② “중국 때리기 이번에도 미루면 미국이 죽는다”
중국의 경제력(GDP 기준)은 1980년 미국의 11%였으나 2017년 66%로 치솟았다. 그로부터 반년 여 만인 다음해 7월 트럼프 대통령은 대(對)중국 무역·경제 전쟁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중국은 마치 샌드백을 두드리듯 매일 우리를 두들겨 패고,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는데 대체 대통령이란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했다.
통상적으로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제압하려면 국력 격차가 3~4배 돼야 한다. 그런 이유에서 전문가들은 “미국이 정말 중국을 손보려 했다면 2008년 전후(前後)해 행동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08년 당시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14조3000억달러)은 중국(4조4000억달러) 보다 3배 이상 많았기 때문이다.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 중산층의 일상생활에 불가결한 값싼 생필품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중국이 잘 조달했는데다, 미국발 금융위기 발생으로 미국이 중국을 억누를 기회를 놓쳤다”고 말했다. 이후 중국은 성장을 거듭해 세계 최대 교역국이 됐고 2019년 GDP 기준으로 중국(15조6000억달러)은 미국(21조8000억달러)의 72%에 육박하는 무시못할 존재로 컸다.
중국 공산당이 미국과의 전략 갈등을 벌이면서도 타협은커녕 ‘결사 항전’을 거듭 다짐하는 것도 트럼프측을 자극한다. 중국 최고 권력기관인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지난달 26일부터 29일까지 제19기 제5차 전체회의(19기 5중전회)를 열어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를 달성해 미국을 뛰어넘겠다는 국가 전략 목표를 재확인했다.
이런 마당에 누구보다 패배를 싫어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대중 압박 공세를 완화하는 것은 곧 정치적 자살(自殺)인 만큼, 공세의 고삐를 더 조일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③ 대중 압박은 트럼프의 최대 치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숱한 거짓말 논란에 빠졌고 주류 미디어들과 정면 충돌했다. 경제 이익이라는 잣대로 동맹 관계를 훼손하면서 러시아, 중국, 북한 등 독재 정권 지도자들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툭하면 행정부 장관들과 백악관 핵심 참모들을 트위터로 일방 해고해 미국 대통령 답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거의 유일하게 중국에 대한 전방위 압박과 디커플링(de-coupling) 공세에서만은 의회와 언론, 미국인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이는 미국 사회 전반에 급속도로 퍼지는 ‘반중(反中) 정서’를 그가 꿰뚫었기 때문이다. 올 10월 초 미국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실시한 조사에서 미국 성인들의 73%는 “중국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2011년 조사의 ’36%'와 비교하면 두배 넘게 뛴 것으로 해당 조사를 실시한 지 15년만에 가장 높았다. 특히 50세 이상 미국인 가운데는 81%, 18~29세 젊은 층에서는 56%를 각각 기록할 정도로 반중 분위기는 미·중 수교 이후 최고조에 달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상대방을 정신없게 만드는 ‘미치광이 전략(Madman Strategy)’과 기만술(欺瞞術)은 어느 미국 대통령도 구사하지 못한 묘수(妙手)로 꼽힌다.
안세영 전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여러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대중 압박 공세는 트럼프의 4년 재임 중 가장 돋보이는 치적(治績)”이라고 말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도 이달 17일자 논평(論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봉쇄 전략을 자신의 최고 치적으로 남기고 싶어 한다. 대중 정책 변화는 트럼프 행정부 최대 ‘외교 유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④ 트럼피즘의 핵심 요체이다
중국에 대한 전방위 공세는 트럼프 입장에서 ‘1석(石)3조(鳥)’의 다목적 카드이기도 하다. 먼저 대중 공세는 대선 불복과 부정 선거 공방을 벌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존재감과 행정부 장악력을 높여줘 레임덕(lameduck·권력 약화) 현상을 막는 ‘정치적 호재’이다. 그가 중국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중국과의 군사적 긴장을 높일 경우, 정부 부처들도 긴장감을 갖고 움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바이든 진영과 대립각을 세우고 차별화하는데도 유용하다. 선이(沈逸) 상하이 푸단대 교수는 “만약 바이든이 취임 후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취소하면, 그는 바이든에 대해 ‘판다 허거(Panda Hugger·중국을 지지하는 서구 정치인)’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올해 대통령 선거 중에도 바이든 후보가 중국 국기(國旗) 앞에 서 있는 합성 사진을 광고 카피로 만들어 유포하며 ‘베이징 바이든’ ‘조진핑’이라고 비판했다.
지난달 25일 트위터에서는 “슬리피 조(Sleepy Joe·조 바이든 전 부통령) 만큼 중국에 나약한 사람은 50년 동안 없었다. 그는 중국이 원하는 건 뭐든지 내줬다”며 바이든을 ‘친중(親中) 정치인’이라고 몰아부쳤다.
‘중국 때리기’는 중국 경제 성장으로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백인 중하류층이 열광하는 이슈이다. 미국내 엘리트들도 중국의 세계 패권 야욕에 본격적으로 위협을 느끼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 ‘중국 때리기’는 트럼프의 퇴장 이후에도 미국 사회를 휩쓸 '트럼피즘(Trumpism·트럼프주의)의 핵심 어젠다로 꼽힌다.
박재창 한국외대 석좌교수는 “미국 내에서 큰 박수를 받아온 대중 강경 노선을 트럼프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바이든이 대통령에 취임하더라도 방법만 다를 뿐 이런 흐름을 계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