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이 19일 델라웨어주에서 코로나 대응 관련 주지사들과의 화상회의를 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내각 인선의 최대 화제인 재무장관 후보에 관해 '민주당 내 진보와 중도를 모두 아우르는 사람을 결정했다'고 언급했다.

“재무장관 후보는 결정했고 추수감사절(26일) 전후 발표하겠다. 민주당 내 진보와 중도를 모두 아우르는 인물이 될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19일(현지 시각) 델라웨어 윌밍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재무장관은 누가 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초대 경제수장 인선을 놓고 경력이 아닌 ‘당내 정치 스펙트럼’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꼽은 것이다.

왜일까. 애초 바이든 당선을 전후해 재무장관 후보 1순위로 레이얼 브레이너드(58) 연방준비제도 이사가 꼽혔다. 오바마 정부에서 재무 차관을 지냈고, 연준 내에서도 신망이 높으며, 50대 여성이라 여러 가지로 괜찮은 카드였다. 그러자 민주당 안팎의 진보·좌파 진영에서 즉각 ‘절대 장관 시키면 안 되는 인물 블랙리스트’를 내고, 맨 위에 브레이너드를 올렸다. 월가 금융계와 너무 가깝고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에 반대했던 전력이 있어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민주당 바이든 당선인을 중심으로 한 중도파는 레이얼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를, 좌파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을 밀며 전쟁을 벌여왔다.

대신 진보 그룹은 부유세 신설과 대기업 분할, 서민 자녀 대학 학자금 탕감 등을 주장해온 강성 좌파 엘리자베스 워런(71) 상원의원을 추천했다. 워런은 오바마 정부 때 신설 소비자보호청장에 고려됐으나 상원에서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일부가 반대해 낙마했다. 바이든 측은 “워런을 재무장관에 지명했다간, 상원 인준은커녕 청문회장이 전쟁터가 될 수 있다”며 난감해하고 있다.

이에 따라 19일 CNBC와 폭스뉴스 등은 바이든이 띄운 ‘진보와 중도를 모두 아우를’ 재무장관은 의외의 후보인 재닛 옐런(74) 전 연준 의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옐런은 진보 그룹에선 3순위로, 바이든 이너서클도 4~5순위쯤에 올려놓았던 무색무취한 인물이다.

민주당의 중도와 진보 진영 간 파벌 싸움 속에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이 초대 경제 수장인 재무장관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

재무장관 전쟁은 시작일 뿐이다. 현재 내각 주요 포스트를 놓고 민주당의 중도·진보 진영은 벌써부터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진보 진영은 400~600명의 장·차관급 인사안을 들이밀며 바이든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다. 좌파 경제학자인 조셉 스티글리츠를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으로, 이번에 갓 재선된 팔레스타인계 하원의원 라시다 틀라입을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으로 밀거나, 대통령 직속 기후변화 담당 조직을 신설하라는 식이다. 18일엔 진보 238개 시민단체가 연합해 바이든에게 “취임 즉시 행정명령으로 서민층 1인당 5만달러(약 5600만원)의 대학 학자금을 탕감하라”고 공개 요구했다.

이들은 최근 흑인인 세드릭 리치먼드 전 하원의원이 백악관 선임고문에 임명되자 “석유업계 후원금을 많이 받아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막을 것”이라며 인사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사상 첫 여성 국방장관으로 유력한 미셸 플러노이 전 차관에 대해서도 ‘방산업체 연계설’을 들어 반대한다.

일부 좌파 거물들은 스스로 자기를 추천하기도 한다. 경선에서 바이든과 끝까지 경쟁했던 버니 샌더스(79·무소속·버몬트) 상원의원은 18일 CNN에 나와 “노동부 장관 자리가 매력적”이라며 “최저임금 인상, 남녀 동일 임금 실현, 연금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샌더스 측은 경선에서 하차하고 바이든을 지지하던 지난 4월부터 “집권하면 노동장관 시켜달라”고 했는데, 바이든은 “당신이 입각하면 버몬트주 상원의원직이 공화당에 넘어갈 수 있다”며 말리고 있다고 한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좌파와 젊은 층에 영향력이 큰 인물로, 바이든의 대선 승리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그는 최근 '노동장관을 하고 싶다'며 공공연히 인사 요구를 하고 있다.

민주당의 중도와 진보 진영은 같은 정당이라고 보기 힘들 만큼 이념과 세대에서 큰 격차를 갖고 있지만, 트럼프 정권 저지를 위해 협력했다. 그러나 대선이 끝나자마자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 중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진보 진영은 ‘승리 지분’을 주장하고 나왔다. “당내의 짧았던 휴전은 끝났다”(뉴욕타임스) “민주당 빅텐트가 벌써 와해되고 있다”(CNN)는 말이 나온다.

바이든은 당내 통합을 위해 샌더스를 위시한 진보 진영 요구를 안 받아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를 다 수용하기도 어려운 입장이라고 한다. 민주당 주류와 중도파는 바이든이 이미 대선에서 ‘사회주의에 포획된 후보’란 이미지로 공격받은 데다, 경찰 무력화 같은 극단적 주장 때문에 상·하원 선거에서 고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좌파가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서면 민주당 정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