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국무부 장관에 토니 블링컨(58) 전 국무부 부장관을 지명할 예정이라고 블룸버그통신 등 미국 언론이 22일(현지 시각) 일제히 보도했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는 제이크 설리번(44) 전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이 내정됐다고 전했다. 또 유엔 주재 미국 대사에는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68) 전 국무부 아프리카 담당 차관보가 지명될 것으로 보인다고 악시오스 등이 보도했다.
이 세 자리는 미국 외교·안보 정책 수립의 핵심으로, 이번 내정을 통해 사실상 바이든의 외교·안보 라인이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 바이든 백악관의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론 클레인은 이날 “오는 화요일(24일)에 첫 내각 인선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블링컨은 오바마 행정부 1기였던 2009~2013년 바이든 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다. 블링컨이 오바마 대통령의 국가안보 부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기자,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직을 이어받았던 사람이 설리번이다. 이들은 ‘동맹’과 ‘다자주의'를 강조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그동안 해왔던 미·북 정상 간의 ‘톱다운(Top down·하향식) 외교’를 비판해 왔다. 이 때문에 대북 제재와 비핵화 협상에서는 문재인 정부와 다소 이견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을 지지하고 한·미 동맹 강화를 주장해왔다.
특히 블링컨은 지난 9월 한 대담 프로에서 북한 김정은을 ‘최악의 폭군'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바이든과 함께 일한 기간만 약 20년으로, 일각에서는 그를 바이든의 ‘또 다른 자아’(Alter ego)로 부른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토머스 그린필드는 35년 경력의 직업 외교관 출신으로 오바마 행정부에서 주라이베리아 대사와 국무부 차관보를 지냈다. 흑인 여성으로 ‘다양성’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 기조에 맞고, 트럼프가 경시했던 직업 외교관들의 사기를 살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유엔을 통한 외교를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그의 역할도 커질 전망이다.
바이든이 이처럼 ‘오바마 행정부 사람들'로 예상 가능한 인사를 하면서, 국방장관에는 미셸 플러노이(59) 전 국방부 차관이 지명될 확률이 높아졌다. 플러노이는 오바마 행정부의 국방차관을 지냈으며, 당시부터 ‘최초의 여성 국방장관 후보자'란 말을 들었다. 그는 중국이 오판하지 않도록 미국이 확고한 억지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대중(對中) 강경파다.
“섣부른 미·북 합의땐 전쟁 위험” 미국 외교 주류의 컴백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토니 블링컨(58) 전 국무부 부장관을 새 행정부의 국무장관으로 내정한 데 대해 22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는 “바이든이 ‘글로벌 동맹의 수호자’를 선택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바이든이 ‘경험’과 기존의 외교 정책 수립 기관들을 강조하며 블링컨을 국무장관으로 골랐다”고 해석했다. ‘미국 우선주의’, 그리고 정상 간 외교를 중시하는 ‘톱다운(Top down·하향식)’ 방식을 내세우며 동맹을 분열시키고, 경험 많은 외교 엘리트들을 경시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뒤집겠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바이든은 지난 10일 영국·프랑스·독일 등 외국 정상과 통화하면서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동맹을 강화하고, 유엔과 국제기구를 중시하는 다자주의(多者主義) 외교를 복원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 불가능성’ 대신에 ‘예측 가능성’으로 돌아가겠다는 취지였다.
블링컨과 함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제이크 설리번(44) 전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을, 유엔 주재 미국 대사에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68) 전 국무부 아프리카 담당 차관보를 내정한 것도 그 연장 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독주(獨走)하던 외교·안보 정책을 다시 전통적 엘리트와 직업 외교관 손에 맡기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블링컨은 하버드대, 설리번은 예일대를 졸업했고, 토머스 그린필드는 35년 동안 국무부에서 일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배척했던 워싱턴DC의 전통적 외교 엘리트인 셈이다.
오랫동안 민주당 행정부에 몸담았던 블링컨은 바이든과의 인연도 오래된 만큼 ‘최측근’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그는 1994~2001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특별보좌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연설 담당 선임 국장 등을 지냈고,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바이든을 돕다가 오바마 행정부에 합류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바이든 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출발해, 오바마의 국가안보부보좌관과 국무부 부장관까지 지냈다. 외교적 경험이 풍부하고 외교적 언사에도 능하다.
설리번은 한때 바이든의 러닝메이트로 거론됐던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을 보좌하다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알게 됐다. 2008년 민주당 경선 때 클린턴을 도왔고, 클린턴이 오바마 행정부의 국무장관이 되면서 국무장관 비서실장으로 다양한 외교 현장에 동행했다. 클린턴이 국무장관을 그만둔 뒤에는 바이든 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을 맡았다.
블링컨과 설리번은 모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직접 상대하는 트럼프식 대북 외교를 강하게 비판해 왔다. 특히 블링컨은 김정은을 여러 차례 “폭력배(thug)”로 부른 바이든과 같은 대북관을 갖고 있다. 그는 북한을 “최악의 수용소 국가”로 표현하기도 했다. 지난 9월 한 대담 프로에서는 김정은을 ‘최악의 폭군’이라고 칭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미·영·프·중·러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5국과 독일(P+1), 이란 간의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이끌어 내는 데 한몫했던 블링컨은 북핵 문제에서도 이를 모범으로 생각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일본 같은 동맹국들이 뭉쳐 중국에 압력을 가해 강력한 대북 제재를 실행해야 북한을 실무 협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대북 제재 완화 등 북한에 당근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문재인 정부와 이견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설리번은 미·북이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을 준비하던 2018년 4월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북한은 큰 약속을 하고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진전시킨 역사가 있다”며 “경제적으로 숨 쉴 공간을 얻으려고 일련의 약속을 하고 나중에 파기하는 것이 북한의 오래된 전략”이라고 했다. 북한의 빈말만 믿고 제재를 해제해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또 다른 기고문에서는 “북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을 제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처럼 다자적 노력과 대북 제재를 강조하면 필연적으로 유엔 주재 미국 대사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바이든이 취임 즉시 하겠다고 밝힌 ‘파리기후협약 재가입’도 유엔 주재 미국 대사의 일이다. 이에 따라 바이든은 토머스 그린필드 내정자에게 ‘각료급(cabinet-rank)’ 대사란 타이틀을 달아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내각 일원이 아니지만, 대통령의 재량에 따라 국무장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각료의 직급을 줄 수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수전 라이스, 서맨사 파워란 두 여성 유엔 대사를 각료급으로 만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