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방한에 맞춰 미 국무부가 “중국 공산당의 선전이 진실을 묻을 수는 없다”는 입장을 냈다. 6·25 전쟁의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였던 장진호 전투 70주년을 기념하면서, 중국이 북한의 남침을 지원했던 과거를 숨긴 채 이를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의 공격에 대항해 북한을 돕는다는 뜻) 전쟁'으로 부르고 있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케일 브라운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25일(현지 시각) 트위터 계정에 “장진호 전투 70주년 기념일에 우리는 미군과 한국군을 포함해 장진호에서 싸웠던 2만5000여명의 유엔군을 기린다”는 글을 올렸다. 브라운 부대변인은 “그들의 영웅적인 행동은 유엔군이 적의 전선을 뚫고 9만8000명의 난민을 흥남부두에서 대피시킬 수 있도록 했다”고 썼다.
장진호 전투는 6·25 전쟁 중인 1950년 11월 26일부터 17일간 치뤄졌다. 미 해병대는 10배 많은 중국 인민해방군 병력이 흥남으로 진출하지 못하도록 방어하면서 연합군과 피란민 등 20만명이 남쪽으로 철수할 수 있게 시간을 벌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도 이때 흥남부두에서 미국 군함 ‘메러디스 빅토리아'호를 타고 거제도로 피란했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2017년 첫 공식 방미 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장진호의 (미군) 용사들이 없었으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한 적 있다. 문 대통령은 26일 왕이 부장을 만날 예정인데, 여기에 맞춰 국무부가 장진호 전투를 상기시킨 셈이다.
브라운 부대변인은 또 중국 교과서 사진과 함께 “이 기념일은 우리가 몇 가지 사실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준다.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중국의 지원을 받은 북한이 한국을 침공하면서 시작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 교과서들은 그저 ‘내전이 발발했다'고 기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오(쩌둥)은 북한이 1950년 6월 25일에 대한민국을 침공하도록 격려했지만, 주권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동맹들과 함께 하는 미국의 결단력을 과소평가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브라운 부대변인은 “중국 공산당의 선전이 진실을 숨길 수 없다”며 “(중국의 역사학자인) 션즈화가 마오(쩌둥)과 스탈린 사이의 코뮈니케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북한과 소련 모두 북한이 대한민국을 침공하기 전에 중국의 동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하버드대의 연구 자료도 링크했다. 이어 “70년 동안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은 한국전쟁에 대한 책임을 피하며 자국민들을 오도했다. 중국 관료, 언론, 심지어 중국 교사들은 여전히 한국전쟁을 ‘항미원조 전쟁'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구소련이 붕괴하기 전까지는 6·25전쟁의 발발원인에 대해 남침설과 북침설이 엇갈렸다. 브루스 커밍스나 가브리엘 콜코 같은 일부 미국 학자들조차 미국이 한국을 부추겨, 혹은 한국군의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소련이 무너진 후 관련 외교문서가 공개되면서 북·중·러가 사전에 계획해서 대한민국을 침략한 ‘남침’이란 점이 분명해졌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은 1994년 방러한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게 방문 선물로 소련의 6·25 전쟁 관련 문서들을 넘겨줬다. 이런 문서들을 통해 김일성이 남침 전에 이오시프 스탈린의 동의를 끈질기게 구했고 마오쩌둥과도 상의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중국 공산당은 6·25 전쟁의 발발 원인은 언급하지 않은 채, 반미 감정 고취에 즐겨 이용해 왔다. 특히 6·25 발발 70주년인 올해는 ‘압록강을 건너다', ‘우리의 전쟁', ‘빙설장진호' 같은 선전 드라마와 영화를 대대적으로 제작했다. 지난 달에는 “6·25 전쟁 때 한국과 미국이 함께 시련을 겪었다”는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발언에 대해 “중국군 희생을 무시했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중국인들이 이런 비난을 하는 것은 중국이 전쟁을 일으킨 책임자란 것을 잘 모르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