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지지파의 또 다른 상징처럼 여겨졌던 미 성조기(星條旗)가 미국인 전체의 품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지난달 29일 보도했다. 미 대선 기간뿐 아니라, 지난 4년간 트럼프 지지 세력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미국 우선(America First)’등의 트럼프 스티커를 부착한 픽업트럭에 미국 국기를 게양하고 거리를 달렸다.
반대로 지난 여름 이후 미 전역을 휩쓴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M·Black Lives Matter)’캠페인과 무정부주의자들이 가담한 과격 시위 현장에선 수많은 성조기가 찢기고 불태워졌다. 성조기는 트럼프 찬반 진영을 가르는 하나의 잣대가 됐다. 그런데 이제 선거에 이겼다고 생각한 반(反)트럼프 세력이 이제 서서히 성조기를 받아들이고 집 앞에 게양하기 시작한 것이다.
성조기 수난은 물론 처음이 아니다. 베트남 전쟁 때 미국 국기는 부정적 상징이 됐고, 레이건 행정부 때 미 공화당은 좌파 시위대가 국기를 불태우는 행동을 막기 위해, ‘국기 소각(燒却)’을 ‘표현의 자유’에서 제외하는 헌법 수정을 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성조기를 둘러싼 편가름이 두드러진 것은 트럼프 시대다. 그의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슬로건 옆에 성조기를 달았고, 트럼프도 지난 2월 최대 보수연합집회인 CPAC에서 연설을 마치고 무대 위 성조기를 껴안고 입맞추며 “내 사랑(I love you, baby)”이라고 말했다. 극우 세력인 프라우드 보이스(Proud Boys)는 위협적인 시위에서 성조기를 흔들어댔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10월 “왜 집 마당에 바이든 지지 사인과 미국 국기를 같이 놓지 않느냐”며 마치 애국심이 친(親)트럼프 미국인들의 전유물(專有物)인 것처럼 조롱했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고, 그의 트윗 밑에는 바이든 지지 사인과 성조기를 나란히 건 많은 사진이 붙었다. 하지만, 흑인의 인권 개선을 요구하며 경찰 폭력을 규탄하고 경찰 해산을 촉구하는 분위기에 반발한 미국인들은 ‘경찰관의 목숨도 중요하다(Blue Lives Matter)’를 뜻하는 검은색과 흰색으로 바꾼 성조기를 내걸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많은 미국인, 특히 반(反)트럼프 성향의 미국인들은 차량 범퍼나 티셔츠에 성조기가 있으면 ‘미친 사람’ 취급을 했다. 그러나 지난 9월부터 미 민주당과 진보 진영에서 “미 국기를 되찾자”는 트윗이 점차 돌기 시작했다.
또 선거가 끝나자, 트위터에는 “지난 4년간 성조기를 트럼프의 미친 짓으로 생각했는데, 드디어 다시 ‘내 깃발’로 다시 보게 됐다” “국기가 한 집단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대표하게 돼 기쁘다”는 류의 트윗이 많이 등장했다. 워싱턴포스트의 한 칼럼니스트는 지난달 17일 “여름에 아들에게 성조기가 그려진 새 수영복을 사줬는데, 친구들로부터 ‘공화당원이네’ ‘트럼프 팬’이란 놀림을 당했다”며 “이제 수년간 트럼프와 우파가 납치한 성조기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동안 트럼프와 특정 세력 때문에 성조기를 태우고 회피하던 미국인들이 성조기를 다시 환영한다고 해서, 미국인이 성조기 아래서 하나될 가능성은 요원하다. 미 대선에서 승리한 세력에게 성조기는 ‘민주주의의 승리’와 ‘되찾은 나라’를 상징하지만, 진 쪽에게 성조기는 ‘도둑맞은 선거와 부정 선거’로부터 구출해야 낼 위기의 미국을 상징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