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10월 17일 이라크 사마라에서 정찰 중이던 미군 차량이 폭탄 공격을 받으면서 7명이 타고 있던 군용 차량이 화염에 휩싸였다. 차에서 빠져나온 흑인 부사관인 얼윈 캐시(35) 중사는 가벼운 화상을 입었다.
그러나 몸을 추스를새도 없이 다시 차를 집어삼킨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차에 갇힌 동료들을 구출해내기 위해서였다. 휘발유에 흠뻑 젖어있던 그의 군복이 화염에 타오르며 몸의 75%가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병원으로 후송된 캐시 중사는 사고 20여일뒤인 2005년 11월 8일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의 군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함께 타고 있던 부하 3명도 화상 치료 중 숨졌고, 이라크인 통역원은 현장에서 폭발 충격으로 사망할만큼 큰 사고였다.
그러나 현장 목격담을 통해 캐시 중사의 살신성인이 회자됐고, 이로 인해 미국 무공훈장 중에서 세번째로 격이 높은 은성훈장이 사후 수여됐다. 하지만, “이런 군인에게는 명예 훈장을 줘야 마땅하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명예 훈장은 전장에서 공을 세운 미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등급 훈장이다.
고(故) 캐시 중사가 명예 훈장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5일(현지 시각) 대통령이 그를 명예 훈장 수여자로 선정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안에 서명한 것이다. 단 한 명의 흑인 전몰장병을 위해 만들어진 이 법안이 만들어져 효력을 얻는 과정에서 분열돼있던 정치권은 모처럼 단합된 모습을 보였다.
법안 발의는 민주당의 스테파니 머피(42·플로리다), 공화당의 마이클 월츠(44·플로리다)·댄 크렌쇼(36·텍사스) 등 세 연방하원의원이 맡았다. 머피 의원은 보트 피플(베트남 난민) 출신이다. 갓난 아기이던 그를 품에 안은 부모를 태운 보트가 망망대해를 떠돌다 미 해군에 구출됐다. 그렇게 미국에 정착한 그는 국방부 안보 전문가와 대학교수, 사업가로 성공했고, 2016년 베트남계 여성으로는 첫 연방하원의원이 됐다.
백인 남성인 월츠의원과 크렌쇼 의원은 예비역 해군 출신으로 모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에 참전했다. 특히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출신인 크렌쇼 의원은 아프가니스탄 근무 당시 폭발사고로 오른쪽 눈의 시력을 상실했다.
국방부도 캐시 상사의 명예 훈장 추서를 위해 측면 지원했다. 최근 경질된 마크 에스퍼 전 국방장관은 재임 중이던 지난 8월 의원들에게 이 캐시 중사의 명예 훈장 수훈이 가능하도록 입법을 지원해달라는 편지를 써서 보냈다. 세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하원을 거쳐 상원을 통과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했다.
명예 훈장은 오직 대통령만 수여할 수 있다. 흑인 전몰장병의 명예를 최대치로 높이려 당파·인종·성별을 넘어선 연합작전이 펼쳐졌고, 퇴임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으로 성공리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