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 대만계 미국인인 캐서린 타이(45) 하원 세입위원회 수석 무역 고문을 지명할 예정이라고 미 언론들이 9일(현지 시각) 일제히 보도했다. 미국의 통상교섭을 총괄하는 무역대표부는 대통령 직속 기관이며, 그 대표는 장관급이다. 타이 지명자가 상원 인준을 받아 취임하면 유색인종 여성으로 최초의 USTR 대표가 된다. 아시아계가 USTR 대표를 맡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타이 지명자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예일대의 차이나 펠로(방문연구원)로 중국 광저우의 중산대학에서 2년간 영어를 가르쳤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타이가 “만다린어(중국의 표준어 격인 보통화)를 유창하게 말한다”면서 “중국과의 새 무역 합의를 협상하는 책임을 맡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그간 “(중국의) 폭압적인 경제 관행에 맞서기 위해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의 경제력을 통합할 것”이라며 반중(反中) 연대 형성을 강조해 왔다. 또 대만과 중국의 양안(兩岸) 관계에 대해서도 “대만인들의 희망과 이익에 부합하는 평화적 해결을 지지한다”고 했다. 그런 바이든의 무역 정책을 대만계가 실행하게 된 것이다. 중국을 잘 아는 대만계 인물을 내세워 중국 때리기를 하겠다는 셈이다. 타이가 대만계란 점이 껄끄러웠는지 중국 관영 환구시보가 운영하는 환구망은 타이의 내정 사실을 보도하며 그를 “아시아계(亞裔) 여성”으로만 표현했다.
대만의 연합보(聯合報)와 홍콩의 반중 성향 신문 빈과일보(蘋果日報) 등은 타이의 부모가 대만 출신의 이민자라고 보도했다. 타이는 코네티컷주에서 태어나 워싱턴DC에서 자랐지만, 다이치(戴琦)란 대만식 이름을 갖고 있고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자주 대만을 방문했다고 한다.
예일대 학부를 졸업하고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학박사를 받은 타이는 2007~2014년 USTR에서 일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취임 3년 차였던 2011년부터는 대중 무역을 총괄 담당했다. 이때 중국의 잘못된 무역 관행을 여러 차례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 승소로 이끌었다고 한다. 미국의 진보적 비영리단체인 ‘퍼블릭 시티즌스 글로벌 트레이드 워치’의 로리 월락 대표는 워싱턴포스트에 타이가 중국과의 무역에 관한 “백과사전식 지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대중 강경파'란 평가를 받는 타이는 지난 8월 ‘미국진보센터’가 개최한 ‘무역을 위한 진보적 비전’이란 웨비나에서 “중국과의 경쟁에 있어 공격적이고 대담한 조치를 취하는 데 대해 정말 굳건한 정치적 지지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역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의회와 미국민의 굳건한 정치적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나온 말이었다. 그는 “(중국과의 경쟁은) 단지 경제적 가치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더 넓은 가치에 관한 것이다. 많은 것이 달려 있다”면서 “궁극적으로 우리가 누리는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삶의 방식을 수호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9월 미국국제법학회 세미나에서도 타이는 WTO 개혁 문제에 관해 “이(트럼프) 행정부가 제기한 우려의 내용은 (민주·공화) 양당의 전임 행정부들이 가졌던 우려와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개발도상국 지위를 내세워 부당한 이익을 누리고 있다며 중국에 편향된 WTO를 개혁해야 한다고 했는데, 바이든 행정부도 그런 생각을 같이 한다는 취지였다. 그는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할 때는 시간이 흐르면 중국도 많은 WTO 회원국이 공유한 경제적, 정치적 규범 속으로 들어오리란 희망과 기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많은 실망이 있었다. 중국이란 도전의 본질을 매우 명확하게 봐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내 진보파와 중도파 모두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공화당에서도 큰 거부감이 없는 점도 타이의 장점으로 여겨진다. 미국의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미 의회 관계자를 인용해 “타이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때도 사람들은 타이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