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7일(현지 시각) 워싱턴DC 연방 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 시위대의 의사당 난입 사태의 책임을 물어 수정헌법 25조 발동을 통한 트럼프의 축출을 요구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 사건 후폭풍이 거세다. 수사를 맡은 연방검찰은 7일(현지 시각) “모든 행위자를 살펴보고 있다”며 트럼프에 대한 수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수정헌법 25조를 발동해 트럼프를 면직시키라고 압박하면서, 이것이 성사되지 않으면 탄핵을 다시 시도하겠다고 했다. 수사·면직·탄핵이란 3가지 압박 카드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는 이날 “빈틈없는 정권 이양을 보장하겠다”며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현실적으로 트럼프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수사다. 마이클 셔윈 워싱턴DC 연방검찰 검사장 대행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트럼프와 그 측근들에 대한 수사·기소 가능성과 관련해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했다. 그는 “모든 행위자와 모든 범죄 혐의를 살펴보고 있다”며 “증거가 범죄 구성 요건에 부합한다면 기소될 것”이라고 했다.

미 대통령은 재직하는 동안 범죄 혐의로 기소되지 않는 면책 특권을 누리지만 10여일 후 임기가 끝나면 트럼프는 더 이상 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 트럼프는 이번에 지지자들 집회에 나가 “의회로 가야 한다”며 사실상 의사당 난입을 선동했다. 셔윈은 난입한 시위대에 대해 반란, 소요죄 등을 거론하며 “가능한 한 가장 강한 혐의를 적용하겠다”고 했다. 트럼프의 선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범죄 혐의를 적용하면 형사 처벌을 할 수도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의 직무 불능과 승계 절차를 규정한 수정헌법 25조을 통한 ‘면직’ 압박도 받고 있다. 수정헌법 25조 4항은 부통령과 장관 다수가 ‘대통령이 직무상의 권한과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내용의 공한(공적 서한)을 상원 임시 의장과 하원 의장에게 보내면 부통령이 즉시 대통령직을 대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이날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이 조항을 발동할 것을 요구했다. 애덤 킨징어 공화당 하원의원도 “악몽을 끝내기 위해 수정헌법 25조를 발동해야 할 때”라고 했다.

“트럼프를 탄핵하라” - 7일 오후(현지 시각) 미국 뉴욕주 브루클린에서 열린 반(反)트럼프 집회에 참석한 한 여성이‘트럼프를 탄핵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극렬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점거 시위에 충격을 받은 시민들은 이날 수천 명이 모여 행진을 벌였다. /로이터 연합뉴스

그러나 25조 4항은 부통령이 주도해 발동해야 하는데, 펜스 부통령이 이를 꺼리고 있어 실현 가능성이 낮다. 설령 펜스가 마음을 바꿔 이 조항을 발동해도, 트럼프가 면직을 수용하지 않으면 상·하원 3분의 2의 찬성 표결이 필요하다. 의회의 절반 정도가 공화당인 상태에서 이런 결의가 이뤄지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슈머 원내대표는 이날 “부통령과 내각이 일어서기를 거부한다면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 의회를 소집해야 한다”고 했다. ‘면직’이 안 된다면 민주당이 주도해 ‘탄핵’ 절차를 시작하겠다는 뜻이다. 의회 전문 매체 더힐에 따르면 민주당 데이비드 시실리니 등 진보 성향 하원의원들은 이날 트럼프가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권한을 남용했고 “국가를 상대로 미수에 그친 쿠데타를 조직하려 했다”는 취지의 탄핵안 초안도 만들었다. 민주당이 실제 탄핵을 추진하면 2019년 말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이어 트럼프에 대한 두 번째 탄핵 소추가 된다.

하지만 트럼프의 남은 임기 안에 탄핵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마치기란 사실상 어렵다. 탄핵소추안은 하원을 거쳐 상원을 통과해야 하는데, 하원은 과반이면 통과가 가능하지만 상원에선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또 상원에서 일종의 재판 절차인 탄핵 심판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각)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영상 메시지를 통해 지지자들의 연방 의사당 난입 사태와 향후 정권 이양 문제에 관해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 정부가 오는 20일 출범할 것이며, 순탄한 정권 이양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트위터 캡처

그럼에도 궁지에 몰린 트럼프는 이날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그는 이날 트위터에 올린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이제 의회가 (대선) 결과를 인증했고, 새 행정부는 1월 20일 출범할 것”이라며 “이제 내 초점은 순조롭고 질서 있고 빈틈없는 정권 이양을 보장하는 것으로 전환한다”고 했다. 전날 의사당 난입 사건에 대해서도 “나도 다른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폭력과 무법에 분노한다”며 “법을 어긴 이들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했다. 전날 지지자들 집회에 나가 “힘을 보여주자”며 의회를 향해 행진할 것을 독려하던 때와는 정반대 모습이다. 퇴진 압박을 진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조기 퇴진 논의가 커지는 와중에 마침내 현실에 굴복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