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일본을 대중(對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 안보의 축(pillar)으로 생각했으며, 이를 위해 한국의 더 많은 기여와 긴밀한 한·일 관계 유지를 원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문서가 12일(현지 시각) 공개됐다. 이런 전략적 판단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한국의 대중 견제 참여와 원만한 한·일 관계를 기대하는 미국의 입장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백악관은 이날 홈페이지에 ‘인도·태평양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프레임워크(framework·틀)’란 10쪽짜리 문서를 공개했다. 이 문서는 최근 사임한 매슈 포틴저 국가안보부보좌관이 NSC의 아시아 담당 선임 국장 시절 작성해서 2018년 2월부터 미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기틀이 됐던 것이다.
이 문서에서 미 정부는 “은밀하거나 강압적인 영향력 행사를 포함해 상대국의 주권을 약화시킬 목적을 가진 중국의 활동에 미국과 세계 전역의 파트너들이 저항력을 갖추는 것”을 이상적 상태로 상정했다. 그러면서 “일본·한국·호주가 (중국을 견제한다는) 이 전략의 최종 목적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동맹 정책을 수립했다. 특히 “일본 자위대의 현대화를 도울 것” “일본이 인도·태평양 안보 구조에서 지역 통합적이고 기술 선진적인 축이 되도록 힘을 실어줄 것(empower)” 등 일본 역할을 강조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한국에 대해선 “한반도 이외의 역내 안보 이슈에 더 큰 역할을 하도록 권고할 것”을 정책으로 삼았다. 미국의 역내 주요 동맹국 중 일본을 대중 견제의 핵심축으로 삼고, 한국도 이를 보조하도록 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문서에는 “인도·일본·호주·미국을 주요 허브로 하는 4각 안보 틀의 형성을 목표로 한다” “일본·호주와의 삼각 협력을 심화한다”는 대목도 있다. 미국·일본·호주·인도 간 4각 협의체인 ‘쿼드(Quad)’의 역량에 더 주목하고, 상대적으로 한국에 대해선 대중 견제 역할을 덜 기대했던 것이다. “동남아시아에서 미국의 전략적 목표를 증폭하기 위해 일본의 주도적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인공지능, 유전자 공학 같은 최첨단 기술의 우위를 추구해 (공산당) 독재에 이용”하려 하며 이것이 “자유 사회에 심각한 도전이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중국이 미국이나 동맹을 군사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억지하기 위해 “실전 투입이 가능한 미군 병력과 대비 태세를 강화한다”는 독자적 견제책도 수립했다.
또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국가 안보 과제로 중국의 비자유주의 영향권 형성과 함께 북한의 위협도 꼽았다. “핵·화학·사이버·생물 무기가 없는 한반도”를 이상적 상태로 상정하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이루는 것을 미국의 정책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되돌리는 조치를 하면 협상을 고려한다”고 했다.
미·북 협상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이 거부감을 가진 ‘CVID’란 용어 대신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 등 다른 용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당초 내부적으로 세운 목표는 CVID와 생화학·사이버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 폐기였던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또 핵을 가진 북한에 대응하기 위한 한·일의 역량 강화를 중시했다. “한국과 일본의 선진적인 재래식 무기 역량 획득 지원”과 “한국과 일본 간 상호 긴밀한 관계 촉진”이 미국이 해야 할 일로 명시돼 있었다.
작성 후 약 3년밖에 지나지 않은 안보 관련 문서가 기밀 해제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별도의 성명에서 “미래에도 오랫동안 인도·태평양을 자유롭고 개방된 곳으로 지키려는 미국의 지속적 헌신에 대해 미국민, 동맹·파트너들과 소통하기 위해” 문서를 공개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