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현지시각) 워싱턴DC 미 의회 주변에서 군인과 경찰들이 중무장한채 경계 근무를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16일(현지 시각) 미국의 수도 워싱턴DC는 계엄령이 내린 듯했다. 20일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 취임식에 있을지 모르는 테러와 소요 사태에 대비해 시내로 들어가는 주요 도로는 모두 군용 트럭과 불도저 등으로 차단됐다. 평소 같으면 취임식을 앞두고 넘쳐나는 로비스트들로 분주했을 ‘K스트리트(로비 회사가 집중된 지역)’엔 중무장한 군인들만 길을 막고 서 있었다.

지난 13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하원에서 통과될 때는 의회 주변만 통제됐지만, 이젠 워싱턴DC 전체가 사실상 봉쇄됐다. 의회 전문 매체 더힐은 국방부가 바이든 취임식까지 2만5000명의 주 방위군을 파견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주한 미군(2만8500명)과 비슷한 규모의 병력으로, 기존에 보도된 2만명보다 5000명 더 늘어난 것이다. 이번 취임식에 초청된 사람은 약 1000명이다. 그런데 경계하는 군인이 참석자의 25배에 달하는 셈이다.

취임식 D-2, 분주한 의사당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식(20일)을 나흘 앞둔 16일(현지 시각) 취임식장인 워싱턴 DC 의사당에 대형 성조기가 걸려있고, 한 관계자가 취임식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첫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할 당시 백인 우월주의자 테러에 대비해 파견됐던 병력이 약 1만명이었다. 바이든 취임식을 앞두고 미국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실제 전날 저녁에는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에 거주하는 한 남성이 권총과 실탄 최소 500발을 트럭에 싣고 의사당 쪽으로 진입하려다 경찰 검문에 걸려 체포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비밀경호국이 워싱턴DC 중심부에 ‘그린존(Green Zone)’과 ‘레드존(Red Zone)’을 지정했다고 보도했다. 레드존에는 특별 허가를 받은 차량만 진입할 수 있고, 그린존에는 해당 지역과의 관련성이 확인된 차량, 주민, 사업자만 통과할 수 있다. 그린존이란 용어는 2003년 미국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중심에 설정한 요새화된 안전 지역을 말한다.

워싱턴DC 시내의 레드존과 그린존 구역. 레드존에는 특별 허가를 받은 차량만 진입할 수 있고, 그린존에는 해당 지역과의 관련성이 확인된 차량, 주민, 사업자만 통과할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 캡처

본지 사무실이 있는 백악관 인근 ‘내셔널 프레스 빌딩’은 지도상으론 레드존이었지만, 해외 특파원들의 편의를 위해 그린존처럼 운영되고 있었다. 기자는 ‘의회 출입 기자증’과 내셔널 프레스 빌딩 주소가 적힌 명함을 보여주고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백악관 주변에서 미 의회로 이어지는 주요 도로인 ‘컨스티투션 애비뉴’와 ‘펜실베이니아 애비뉴’로 연결되는 도로에는 거대한 바리케이드와 함께 검문소가 곳곳에 설치돼 외부인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펜실베이니아 애비뉴’로 연결된 도로에 철제 펜스가 살짝 열린 곳이 있어 기자가 출입구인 줄 알고 들어갔더니 USSS(비밀경호국)라고 적힌 방탄복을 입은 요원이 총을 들고 나타나 “이곳 넘어서 갈 수 없다. 허가 없이 들어가면 체포된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16일(현지시각) 본지 사무실이 있는 워싱턴DC 시내 '내셔널 프레스빌딩' 인근 도로. 이 도로 안으로 들어가려면 사무실 주소가 적힌 명함을 보여주고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 /워싱턴=조의준 특파원

워싱턴DC 중심을 가로지르는 내셔널몰은 15일부터 취임식 이튿날인 21일까지 임시 폐쇄됐고, 워싱턴 시내의 지하철역도 폐쇄됐다. WP는 역사학자를 인용해 “(내셔널몰과 이어지는) 의사당 서쪽 입구에서 취임식을 열기 시작한 1981년 이후 내셔널몰이 폐쇄된 건 처음”이라고 했다.

워싱턴DC 인근 아파트들은 취임식을 전후해 외출을 자제하고, 낯선 사람이 아파트 인근에 나타나면 관리실로 연락하라는 이메일을 돌리기도 했다. 미 항공사들은 워싱턴DC로 향하는 항공기의 총기 운송을 전면 금지했고, 숙박 공유 업체 에어비앤비는 취임식 주간에 워싱턴DC 지역 숙박 예약을 모두 취소했다.

테러 등 소요 사태를 대비해 미 국방부가 워싱턴 DC에 파견한 주 방위군 일부가 16일 의사당 앞에 집결해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비상이 걸린 건 워싱턴DC뿐만 아니다. 연방수사국(FBI)은 이미 16일부터 20일까지 미국 50주(州) 의회에서 무장 시위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CNN방송에 따르면 플로리다와 메인주는 주 의사당 주변에 방위군을 이미 배치했다.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미시간, 버지니아주는 주 의회 주변에 펜스를 설치하고 시위대 통제를 위한 추가 조치를 했다. 버지니아, 메릴랜드, 뉴멕시코, 유타주에선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또 16일부터 전국 120곳이 넘는 연방교도소도 면회를 금지하고 전체 봉쇄에 들어갔다. 외부의 무장 시위가 재소자들을 자극할 수 있는 데다 교도소 내 치안을 책임지는 특수작전대응팀(SORT) 일부가 워싱턴DC로 파견될 예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