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교·안보 분야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존 햄리 소장이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 취임을 앞두고 18일(현지 시각) 본지와 화상 인터뷰를 가졌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부 부장관을 지내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장관 후보로 거론됐던 그는 워싱턴DC의 속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 꼽힌다. 작년에는 한국 정부가 우방과의 친선 등에 공헌이 뚜렷한 외국인에게 주는 ‘수교 훈장’ 중 최고 등급인 ‘광화장’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이 새로 출범할 바이든 행정부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내 느낌에 문재인 정부는 지금 미국의 분위기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며 “(지금 미국에는) 북한과의 대화에 대한 열정은 별로 없다.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또 문재인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에 요청하고 있는 ‘미·북 싱가포르 선언의 계승’에 대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 분위기는 여기(워싱턴DC)에 별로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 중국에 대해 올바른 접근법을 취하도록 돕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미국의 중국 압박에 한국도 동참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는 바이든 시대의 한·미 관계에 대해선 “(바이든 행정부 인사들은) 한국을 역내에서 매우 중요한 핵심 동맹으로 보기 때문에 한국과 아주 강력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를 원할 것”이라며 “다들 외교 경험이 많고 국무부 부장관으로 지명된 웬디 셔먼은 한국을 아주 잘 안다”고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관련해 기대를 표명한 미·북 대화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의견을 보였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 인사들이) 김정은과 무슨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며 “김정은이 작년부터 최근까지 해온 말들을 보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점은 상당히 분명하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미·북 관계의 원점으로 거론한 2018년 6월 싱가포르 선언과 관련해 그는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중요한 돌파구라는 인식은 여기(워싱턴DC)에 없다”고 했다. “국가 안보적 배경이 없는 트럼프 대통령이 했던 흥미로운 회담이지만 내용은 거의 없다는 것이 보편적인 시각”이며 “북한의 행동 결여로 (회담 성과가) 약해졌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가 먼저 대화에 나서기보다) 김정은이 위기를 조성해서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들려고 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고 했다. 또 “군사적 위협을 통해 한국·일본·미국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어내려 하는 것이 (북한의) 오래된 스타일”이라고 했다. 김정은은 최근 노동당 8차 대회에서 “최대의 주적(主敵)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햄리 소장은 “중국을 관리하는 것이 바이든 행정부의 최우선순위가 되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에 더 활동적인 미군 병력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있기 때문에 동북아시아에서는 (미군) 병력의 감축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가 역내 전략을 구상할 때 문재인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에) 어떤 입력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의 초점이 동북아에서 동남아로 옮겨가고 미군 병력이 재배치되면 주한미군도 일정한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문재인 정부의 선제적인 대미 외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최근 한국케미호를 나포한 이란과 관련해선 “바이든 당선인이 (2015년 오바마 행정부에서 체결했지만 트럼프가 탈퇴한) 이란 핵 합의(JCPOA)를 복원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해왔기 때문에 이란 사람들이 기회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란 핵 합의의 복원에 대해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시도하겠지만 그동안 여건이 달라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힘들 것 같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