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시 최대 상업지구인 맨해튼 한복판에 카지노를 만들자는 주장이 처음으로 힘을 얻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카지노 업체들과 부동산 개발 업자들이 사업 계획을 앞다퉈 들이밀고, 뉴욕시와 뉴욕주 의회에서도 찬성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도박 산업의 결정체인 카지노 신설은 관광·부동산업엔 호재지만, 주류·마약 소비와 매춘, 자살률 증가로 이어질 수 있어 어떤 정부도 쉽게 결정하지 못했던 문제다. 뉴욕은 수십 년째 맨해튼 카지노 설립에 부정적이었는데,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갑자기 전향적으로 나선 것이다.
이뿐 아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이달 초 “기호용 마리화나(대마초)와 모바일 스포츠 도박을 합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 경기 침체로 세수(稅收)가 급감해 올해 뉴욕주 재정 적자가 150억달러(약 16조5000억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자 가능한 세원을 최대한 발굴하겠다는 것이다.
코로나 최대 피해국인 미국에서 ‘죄악세(sin tax)’에 의존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죄악세는 술·담배·마약·도박·매춘 등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부과하는 세금이다. 그러나 코로나 봉쇄로 경제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실업이 늘고 소비가 극도로 위축된 상황에서, 죄악세는 쪼들리는 정부의 가장 믿음직한 세수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죄악 소비’ 욕구는 사회·경제적으로 우울한 시기에 더 강해지고, 그만큼 조세 저항이 낮아 입법부터 과세까지 걸림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1930년대 대공황기나 2008년 금융 위기 때 이런 죄악세 의존이 미 전역에서 나타났었다.
가장 ‘만만한’ 죄악세는 술·담배세 인상이다. USA투데이 등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국 절반 이상의 주(州)가 주류·담배세를 올렸고 나머지도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미네소타·미시간·메릴랜드 등에서 세수 분석을 했더니, 지난해 소득세·소비세·법인세 수입은 반 토막 났지만 술·담배 판매에서 나오는 죄악세는 거의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늘었다는 것이다. 콜로라도주의 경우 담배세 수입에 고무돼 그간 규제했던 전자담배와 액상담배까지 허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마리화나 허용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대선 당시 뉴저지·애리조나 등 4주(州)에서 기호용 마리화나 합법화 투표를 했는데, 모두 찬성이 나왔다. 이로써 기호용 마리화나를 허용하는 주는 11주에서 15주로 늘었다. 마리화나를 허용하면 당국은 인·허가 비용과 판매세 등으로 연 수십억달러의 세수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주정부 간 경쟁도 불붙고 있다. 뉴저지에서 마리화나 생산·유통이 허용되자 인근 코네티컷에서도 합법화 움직임이 일고, 인접한 뉴욕까지 역점 사업으로 밀어붙이는 식이다. 의료용 마리화나조차 불허했던 보수적인 텍사스에서도 모든 규제를 풀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포브스에 따르면 미 동부에서 상대적으로 드물었던 카지노 등 도박 산업도 이런 논리로 확산하고 있다. 뉴욕주의 경우 신규 카지노 한 곳에 면허를 주면 최소 5억달러의 수입이 예상된다. 뉴욕은 지난해 월스트리트 금융기관이나 글로벌 기업들이 재택근무 등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최대 세원인 부동산 시장이 초토화되고 식당·교통 등 부대 산업도 연쇄적으로 쓰러진 상황이다. 반면 코로나 방역과 저소득층 지원에 소요될 재정 지출 규모는 급증하고 있다.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카지노와 마약 같은 ‘죄악세’뿐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디지털 매춘’ 산업도 당국의 묵인 아래 활황이다. 코로나로 실직한 젊은 여성이나 싱글맘들이 생계를 위해 자신의 벗은 몸을 찍어 온라인에서 파는, 일반인 간의 누드 사진 매매 사이트(OnlyFans)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각 주정부는 이런 누드 판매자들에게 자영업자 세율(15.3%)을 매겨 과세하고 있다. 이 때문에 뉴욕 증권가에선 “코로나 시대엔 죄악주(株)에 투자하면 손해볼 일은 절대 없다”는 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