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재무부는 26일(현지 시각) 사우디아라비아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에 관여한 전직 정보 당국 수장 아흐메드 알아시리와 사우디 왕실경비대의 ‘신속개입군(RIF)’에 대해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미국과의 거래를 금지하는 제재를 발표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자말 카슈끄지의 끔찍한 살해에 관여한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이날 국무부가 해외의 반체제 인사들을 위협하는 데 가담한 사우디 인사 76명의 미국 입국을 금지했다며 이를 “카슈끄지 금지” 조치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날 국가정보국(ODNI)이 기밀 해제 후 공개한 보고서에서 카슈끄지 암살을 ‘승인’했다고 평가한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에 대한 제재는 이뤄지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은 빈살만을 직접 처벌하는 외교적 비용이 너무 높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바이든의 외교안보 참모들이 중동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인 사우디와의 관계를 해치지 않고서는 빈살만을 제재할 수 없다고 조언했다는 것이다. 바이든의 최측근인 블링컨 국무장관도 기자회견에서 “사우디가 했든 누가 했든 이런 행위는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면서도 “사우디와의 관계는 중요하고 중대한 이익이 여전히 걸려 있으며 사우디의 방위에 충실할 것”이라고 했다.
대선 후보 시절 바이든은 카슈끄지 암살에 대해 “왕세자의 명령이 있었다고 믿는다”며 “그들이 대가를 치르게 하고 버림받은 존재(pariah)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와 인권 후퇴를 외면한다'는 비판 속에서도 “(빈살만) 왕세자가 (사건 지시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며 빈살만을 옹호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차이를 둔 것이다. 바이든이 ODNI 보고서 공개를 결정한 것도 그런 차원의 일이지만, 결국 ‘동맹 사우디와의 관계 유지'란 현실은 외면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장 민주당 내부에서부터 빈살만을 제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 소속 밥 메넨데스 상원 외교위원장은 “이것(정보 보고서 공개)이 첫걸음이고 (바이든) 행정부가 이 극악무도한 범죄에서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한 역할에 대한 책임을 묻는 확고한 조치를 계획하고 있기를 희망한다”는 성명을 냈다. 역시 민주당 소속인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은 트위터에 “(빈살만) 왕세자는 손에 피를 묻혔다. 미국 거주자이자 언론인의 피다. 우리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