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부 조지아주(州) 애틀랜타 일대 아시아계 마사지 업소 3곳에서 16일 오후(현지 시각) 연쇄 총격 사건이 발생해 8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외교부는 “사망자 8명 중 4명이 한국계 여성”이라고 밝혔다. 현지 경찰은 로버트 애런 롱(21)이란 백인 남성을 용의자로 체포해 범행 동기를 수사하고 있다.
현지 한인 매체인 ‘애틀랜타 한국일보’는 사건이 발생한 한인 업소의 종업원이 사건 발생 후 인근 한인 업소들에 연락해 “백인 남성이 ‘아시안을 다 죽이겠다’고 말한 후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도 “사망자 중 6명이 아시안”이라며 “인종적 범죄 동기가 있었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 대유행 이후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 범죄가 늘어나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총격 사건이 발생한 것은 처음이다.
로드니 브라이언트 애틀랜타 경찰서장은 17일 “수사 초기여서 증오 범죄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고 했다. 경찰은 “용의자는 성적 집착이 있었고, 범죄 현장에 종종 방문했다”고 했다.
연쇄 총격 사건은 16일 오후 5시쯤 애틀랜타 근교 체로키 카운티의 중국계 마사지 업소 ‘영스 아시안 마사지’에서 시작됐다. 총 5명이 총격을 받아 2명은 현장에서 숨지고, 병원으로 후송된 3명 중 2명이 사망했다. 체로키 카운티 경찰은 사망자 4명 중 2명이 아시아계 여성이고 백인 남성과 여성이 각각 1명이었다고 전했다.
이후 오후 5시 47분쯤 애틀랜타 시내의 ‘골드 마사지 스파’에서도 총격 사건이 일어나 여성 3명이 숨졌다. 이 업소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또 다른 마사지 업소에서도 총격이 일어나 여성 1명이 숨졌다. 현지 한인 언론들은 두 업소의 주인이 모두 한국계이며, 사망한 여성 4명도 모두 한인이라고 전했다.
“총과 신이 내인생 대부분” 美 총격 용의자는 사냥 즐기는 괴짜
16일 오후 5시쯤(현지 시각) 미국 남부 조지아주 애틀랜타 근교의 작은 도시 액워스 한 상점가에서 ‘탕’ 하는 총소리와 함께 여성의 비명이 들렸다. 중국계 주인이 운영하는 마사지 업소 ‘영스 아시안 마사지’에서 나는 소리였다. 출동한 경찰은 가게 안에서 5명의 총격 피해자를 발견했다. 2명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병원으로 옮겨진 3명 중 2명도 곧 숨을 거뒀다. 사망자 4명 중 절반인 2명이 아시아계 여성이었다.
액워스를 관할하는 체로키 카운티 보안관 사무소는 오후 4시 50분쯤 업소 앞 감시 카메라에 포착된 백인 남성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경찰은 용의자가 운전하는 검은색 현대 투싼 차량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오후 5시 47분쯤 액워스에서 약 50㎞ 떨어진 애틀랜타 시내 피드몬트 로드의 한인 업소 ‘골드 마사지 스파’에서 강도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총격을 받은 한인 여성 3명이 숨진 뒤였다. 경찰이 사건 현장을 살펴보고 있는 동안, 이번에는 길 건너편 또 다른 한인 마사지 업소 ‘아로마세러피 스파’에서 총격이 있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여기서도 한인 여성 1명이 숨졌다. 현지 한인 매체인 ‘애틀랜타 한국일보’는 “희생자 중 현재까지 신원이 밝혀진 사람은 골드 (마사지) 스파에서 일하는 70대 줄리 박씨와 50대 박현정씨”라며 “두 업소엔 모두 한인이 일하고 있다”고 했다.
용의자는 오후 8시 30분쯤 애틀랜타에서 남쪽으로 약 240㎞ 떨어진 조지아주 크리스프 카운티에서 경찰의 차량 추격전 끝에 체포됐다. 액워스 인근의 소도시 우드스톡에 사는 로버트 애런 롱(21)이란 남성이었다. 수사 당국은 그가 탄 차량이 애틀랜타 시내 총격 현장 부근 교통 단속 카메라에도 촬영된 만큼, 그가 세 사건을 모두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롱은 이번 사건 이전까지 폭력적 성향을 보이거나 인종차별적 신념을 드러내진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롱이 2017년 졸업한 세쿼이아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다는 한 남성은 미국 매체 ‘데일리 비스트’에 “(롱이) 좀 괴짜 같은 부류(nerdy)였지만 폭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는 “당시 롱은 악의가 없어 보였고 욕설조차 하지 않았다”며 “사냥을 즐겼고 아버지가 교회의 청소년 사역자 아니면 목사였다. 종교에 빠져 있었다”고 했다. 데일리 비스트는 롱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스타그램에 “피자, 총, 드럼, 음악, 가족, 그리고 신으로 내 인생 대부분이 요약된다”는 글이 올라왔다고 보도했다.
수사 당국은 이날 “아직 범행 동기를 발표하기에는 이르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 범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는 분위기다. 외신들은 17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이번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았고, 연방수사국(FBI)이 수사에 합류했다고 보도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백악관은 (애틀랜타) 시장실과 소통하고 있고, FBI와 계속 연락을 취할 것”이라고 했다.
애틀랜타가 있는 조지아주는 과거 미국 남북전쟁 때 노예제 폐지에 반대하는 남부연합 소속이었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남부 주들을 가리키는 ‘딥 사우스(Deep South)’ 주들 중 하나다. 최근 조지아주의 아시아계 인구는 꾸준히 증가했다. 조지아주 전체 인구의 4.4%, 애틀랜타가 있는 풀턴 카운티 인구의 7.6%가 아시아계다. 1994년 대한항공 취항과 1996년 애틀랜타 하계 올림픽 이후 한인 이민자도 늘기 시작했고, 기아차 조지아 공장 건설 이후 현대·기아차와 협력 업체 직원 등도 많이 살고 있다. 조지아주 전체의 한인 인구는 약 10만명으로 추정된다. 그런 만큼 인종 간 갈등 요소도 많다고 볼 수 있다.
이날 총격 사건 이후 시애틀 경찰 당국은 아시아계 인구가 많은 지역에 대해 순찰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뉴욕 경찰 당국의 반(反)테러 부서도 트위터를 통해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우리의 위대한 아시아 커뮤니티에 대한 지원을 배치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