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미국 대학 입시의 판을 뒤흔들고 있다. 코로나 와중에 SAT(대학수학능력시험) 고사가 제대로 치러지지 않는 등 정상적 대입 준비를 하지 못한 학생들이 입시에 나서면서, 대학들이 어느 학생을 어떤 기준으로 뽑아야 할지를 두고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세계 2차 대전 이래 최대의 대입 혼란”(월스트리트저널)이란 말까지 나온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과 CNN은 16일(현지 시각) 미 주요 대학들이 올가을 신입생 선발을 앞두고 폭증하는 입학지원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부 명문 하버드대엔 올해 전년도보다 42% 늘어난 5만7000명이 지원했고, 서부의 UCLA에는 30% 늘어난 14만명이 지원했다. 뉴욕의 인문학 명문 콜게이트대는 지원자가 2배(102%)로 늘어났다. 입학사정관들은 하루에 50~60개씩 지원서를 읽느라 체력이 소진되고 있다고 한다. 대학들은 어쩔 수 없이 입학사정 기간과 합격자 발표 일정을 연기하고 있다.
주요대 입학 지원이 폭증한 이유는 대입 표준화 시험 점수라는 ‘장애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 전역에선 코로나 방역 때문에 여러 학생이 모여 앉아 시험을 봐야 하는 SAT와 ACT(대학입학자격시험)가 거의 치러지지 못했다. 대입 방식을 자율로 정하는 미 대학들은 SAT 등을 입시 전형 항목에서 배제하거나 선택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하버드와 코넬, 유펜, 콜롬비아, 스탠퍼드, 프린스턴, 예일 등 모든 명문대가 SAT를 선택 항목화(test-optional)하는 조치에 동참했다.
고교생들은 SAT 문턱이 없어지자 그동안 꿈꾸지 못했던 최고 명문대에 앞다퉈 지원하고 있다. “나라고 안 될 것 있느냐” “일단 넣어보기나 하자”며 모두들 눈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 명문대 지원율이 높았던 미 동·서부뿐 아니라 중서부 시골, 그리고 중동과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제3세계 국가들에서도 아이비리그 등에 지원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여기엔 지원서 제출과 면접, 캠퍼스 투어 등이 모두 온라인·화상으로 대체된 것도 작용했다. 최근 미 대입 지원 사이트인 ‘커먼앱’에 따르면 총 지원 건수가 전년도보다 10% 늘었고, 1명당 5.6개 대학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SAT 외에 대학들이 정성평가로 고려하는 고교 내신과 교사 추천서, 과외봉사활동, 인턴십, 예체능 전공자를 위한 각종 대회 등의 평가 자료도 증발되다시피 했다는 점이다. 코로나로 인해 학생들이 대면 활동을 거의 못하고, 학생을 제대로 관찰하고 써야 하는 교사들의 추천서도 신뢰하기 어렵게 됐다. 결국 학생들이 코로나 기간 자신이 무슨 학업 분야를 혼자 어떻게 탐구했는지, 어떤 온라인 활동을 했고 어려움에 처한 가족과 지역사회를 어떻게 도왔는지 등의 내용을 담은 자기소개서나 에세이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다.
코로나가 불러온 이런 대입 현장의 혼란은 세계 2차대전 직후 상황에 비견되고 있다. 미국에선 1944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25세 이하 참전용사들이 원하기만 하면 대학에 입학시키고 4년간 학비를 대주는 ‘제대 군인 원호법(GI Bill)’을 도입한 적 있다. 시골에서 고교 학업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서민 자녀 수백만 명이 상류층의 전유물인 대학에 대거 진학하며 미 학부생은 2배 폭증했다. 당시 명문대들은 ‘자격 미달자들이 대학을 점령했다’며 반발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전장에서 다져진 학생들이 학교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서 대학 문화를 크게 바꿨다는 평가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