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소도시인 실비치(Seal Beach)에 있는 한 은퇴자 공동체에서 살던 83세의 한 한국계 노인이 숨지자, 그 부인에게 “이제 그가 갔으니,이 공동체에서 참고 견뎌야할 아시안이 한 명 줄었다” “당신도 조심하라”는 증오 범죄가 도착해 실비치 경찰서가 수사에 나섰다.

83세로 숨진 최병씨의 유족에게 익명으로 보내진 증오편지./실비치 경찰서

실비치의 ‘레저월드’라는 실버타운에 사는 한국계 미국인 최병(Byong Choi)씨는 지난달 24일 결핵으로 숨졌고, 유족은 코로나 방역 탓에 장례식을 금요일인 지난 19일에야 치를 수 있었다. 로스엔젤레스타임스에 따르면, 최씨는 인디애나주에서 회계사와 음식점 주인으로 일하다가 은퇴하고 지난 20년간 이 실버타운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장례식 날짜인 3월19일 로스엔젤레스의 한 우체국에서 발송된 소인이 찍힌 이 증오 편지가 월요일인 22일 최씨의 아내 ‘용(Yong)’에게 도착했다.

필기체로 쓴 이 편지는 “이제 병(Byong)이 갔으니, 레저 월드에 참아야할 아시아인이 한 명 줄었네. 당신들 지긋지긋한 아시안들이 우리 미국인 공동체를 접수하고 있다. 이를 여기 사는 모든 이가 편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이건 진실이다. 조심하시오. 짐싸서 당신이 속한 나라로 돌아가라”고 쓰여 있었다. 최씨 부부는 1970년 부산에서 이민왔으며, 1976년에 시민권자가 됐다.

숨진 최씨의 네 딸 중 한 명인 클라우디아(46)는 워싱턴포스트에 엄마로부터 이 편지 사진을 전화로 받았을 때에 “화가 났지만 놀라지도 않았다”며 “그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축하하고, 장례식 날에 그 편지를 엄마에게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레저 월드’ 내 거주자 중 한 명이 보냈을 것으로 추정했다. 최씨의 부음(訃音)은 ‘레저월드 신문’과 웹사이트에도 게재됐다. 숨진 최씨는 생전에 ‘레저월드’의 성가대·골프·댄스 클럽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많은 거주자들의 환대를 받았다고 한다.

실비치의 퇴직자 실버타운인 '레저 월드'측이 증오편지가 배달되자, 이를 규탄하며 웹사이트에 올린 성명.

실비치 경찰서의 필립 곤샤크 서장은 성명을 내고 “(실비치가 속한) 오렌지 카운티에서 지난 5년간 증오범죄가 증가하며, 작년엔 특히 아시아계 미국인을 겨냥한 명백한 인종차별적 괴롭힘이 증가했다”며 “이 편지는 최우선 수사대상”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현재 편지에서 지문과 DNA를 찾고 있다. 실버타운인 레저월드 측도 웹사이트 첫 화면에 성명을 내고 익명에 의한 “악의에 찬 편견적 범죄”를 규탄했다.

실비치는 로스엔젤레스 남쪽에 있는 오렌지 카운티에 속한 인구 2만4000여 명의 소도시다. 이 도시에 있는 ‘레저월드’는 2.2㎢(약66만 평) 규모로, 아시아계 퇴직 거주자는 전체의 11% 정도다. 오렌지 카운티 전체의 아시아계는 22%다. 그의 딸은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차별은 살면서 늘 겪었다며, “아버지는 숨질 때까지 이런 아시아계 차별에 대한 경각심과 대화의 일부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