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가 ‘마리화나(대마초) 합법화’를 둘러싼 논란으로 뜨겁다. 50주 중 37주가 마리화나 사용을 합법화했는데, 연방 차원에서 계속 이를 불법으로 유지하는 것이 옳으냐는 논쟁이다.

미 상원의 민주당 1인자인 척 슈머 원내대표는 지난 14일(현지 시각) 미 연방 차원에서 마리화나를 비범죄화하자는 ‘대마초 관리와 기회 법안’ 초안을 공개했다. 마약류 관리를 위한 ‘규제약물법’상 남용 위험성이 크고 의료적 이득은 없는 ‘1급' 약물로 분류돼 있는 마리화나를 아예 규제약물법에서 삭제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연방 차원에서 마리화나를 관리하고 마리화나 거래에 대한 세금을 거두는 것이 가능해진다. 민주당이 다수당인 미 하원에서는 작년 12월 이미 규제약물법에서 마리화나를 삭제하고 마리화나 거래에 5%의 소비세를 부과하는 법안이 통과된 적 있다.

미국 민주당이 이처럼 마리화나 합법화에 적극적인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마리화나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까지는 대마(大麻)라면 무조건 환각을 일으키는 마약으로 보아 금지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였다. 그러나 대마에 대한 의학적 연구가 진행되면서, 사람의 정신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뇌전증, 치매, 우울증 등에 치료 효과가 있는 ‘칸나비디올’(CBD)이란 성분도 있다는 것이 부각됐다. 대마의 잎과 꽃에는 향정신성 물질인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이란 성분이 있지만 그 중독성이 술이나 담배보다 낮을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런 논쟁 속에 1996년 캘리포니아주가 처음 마리화나의 의료용 사용을 합법화했다. 그 후 25년간 50주 중 총 37주가 의료용 마리화나 사용을 합법화했다. 2012년 콜로라도주와 워싱턴주가 처음 성인이 마리화나를 기호용으로 사용(recreational use)하는 것을 합법화한 뒤로는 기호용 사용도 허용하는 주가 점점 늘어났다. 현재는 동부와 서부를 중심으로 총 18주가 기호용과 의료용 사용을 모두 합법화한 상태다. 대마 중에서도 THC 건조중량이 0.3% 이하인 품종은 ‘헴프(Hemp)’란 이름으로 별도 분류돼 2018년부터 연방 차원에서도 재배가 합법화됐다.

지난 4월 퓨리서치센터 여론조사에서는 미국 응답자 중 8%만 ‘마리화나가 합법이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 조사에서 60%의 응답자는 ‘기호용과 의료용 모두 합법이어야 한다'고 답했고, 31%는 ‘의료용은 합법이어야 한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의 91%가 마리화나의 합법화에 찬성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연방 차원에서는 마리화나가 마약류로 분류되면서 주법과 연방법이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지난 2일 미국 도핑방지위원회(USADA)는 여성 육상 스타인 샤캐리 리처드슨의 소변 샘플에서 “마리화나 성분이 검출됐다”며 선수 자격을 한 달간 정지했다. 리처드슨은 미국 육상 대표 선발전 여자 100m에서 우승해 도쿄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상태였다. 하지만 한 달간 선수 자격이 정지되면서 23일 개최되는 도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논란은 정치권으로 번졌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민주당 하원의원과 제이미 래스킨 하원의원 등은 USADA에 “리처드슨이 마리화나를 사용했던 오리건주는 주법에서 마리화나를 합법화하고 있는 곳”이라며 “선수 자격 정지 조치를 철회해달라”고 요구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까지 나서서 “규정은 규정”이라고 말하며 리처드슨의 도쿄 올림픽 출전은 결국 불발됐지만, 이런 상황에서 슈머 원내대표가 ‘연방 차원의 마리화나 합법화'를 들고 나왔다.

‘세수 확보’도 염두에 둔 법안이지만 슈머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마리화나의 과도한 범죄화로 젊은이들이 평생 무거운 전과를 안고 살게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주머니에 마리화나를 조금 갖고 있었다는 이유로 체포된 젊은이들의 고통을 봐왔다”며 “(연방 차원의 합법화는) 진작에 했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상원의 절반을 차지한 공화당이 찬성하지 않아 연방차원의 마리화나 합법화가 조만간 이뤄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치 맥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지난 2018년 ‘헴프’ 합법화 직후 “마리화나의 합법화를 지지할 계획은 없다”고 했고 계속 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 대선 과정에서 마리화나 때문에 감옥에 가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한 적은 있지만, 연방 차원의 합법화는 찬성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