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보좌관 등 여성 11명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난 미국 민주당 소속 앤드루 쿠오모(63) 뉴욕주지사가 10일(현지 시각) 결국 자진 사퇴하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린지 보이란 전 경제특보의 첫 성추행 의혹 제기 8개월, 이달 3일 뉴욕주 검찰의 독립조사 결과 발표 일주일 만이다. 이로써 아버지에 이어 뉴욕주지사에 오르고, 민주당 차기 대선 주자군으로 평가받던 그의 정치 인생은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쿠오모 주지사의 사퇴 소식에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쿠오모 주지사는 이날 낮 TV 생중계 연설을 통해 “나는 뉴욕을 사랑하고, 뉴욕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다. 업무에서 물러나겠다”며 “사퇴 시점은 14일 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내 본능은 이번 논란에 맞서 끝까지 싸우라고 한다”며 “그러나 주지사직을 유지한 채 정략적 공격에 맞서 싸우면 주정부가 마비될 수 있다. 뉴욕을 도울 최선의 방법은 내가 물러나 주정부가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세 딸을 둔 그는 “내가 고의로 여성에게 무례하게 군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란 점을 딸들이 알아주길 바란다”고 했다.
쿠오모는 아버지 마리오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와 동생인 크리스 쿠오모 CNN 앵커 등 ‘뉴욕 쿠오모 왕조’로 불리는 집안의 장남이다. 1983년 아버지 선거 캠프에 합류하면서 정치를 시작한 그는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의 딸 케리와 결혼했다. 2010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지지를 받으며 뉴욕주지사에 당선한 뒤 3선에 성공하는 등 출셋길을 달렸다. 지난해 뉴욕의 코로나 방역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호평을 받으며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미 연방검찰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거침없이 수사를 진행했다. 지난 5개월간 한국계 준 김 전 뉴욕 남부연방지검장 대행이 이끈 검찰의 조사 보고서엔 쿠오모가 20~30대 여직원들에게 수년간 원하지 않는 키스를 강요하고,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고, 성생활을 캐묻거나 자신과 사귈 의향이 있는지 묻고, 주정부 내에서 고성과 협박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진술들이 자세히 적혔다.
검찰 조사에 대해 쿠오모는 “부적절한 신체 접촉은 없었다” “정치적 동기가 있는 조사”라며 반발했다. 그러나 조 바이든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척 슈머 뉴욕 상원의원 등 민주당 수뇌부가 일제히 그의 사임을 요구하며 등을 돌린 데다, 민주당이 장악한 뉴욕주의회에서 쿠오모 탄핵이 가시화되면서 어쩔 수 없이 자진 사퇴를 택했다는 분석이다.
쿠오모 주지사 사퇴에 따라 2022년 말까지 그의 잔여 임기는 그의 러닝메이트였던 캐시 호철(62) 뉴욕주 부지사가 맡게 됐다. 대행이긴 하지만 뉴욕에서 여성 주지사가 탄생하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