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을 겨냥한 자폭 테러를 저지른 것은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서 파생된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다. 이들은 테러 후 IS의 관영 매체였던 아마크 통신을 통해 자신들의 소행임을 인정했다. 지난 2014~2017년 국제사회를 경악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IS가 세계 무대에 재등장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몇 달 동안 테러 전문가들은 아프간 내 IS 연계 무장조직들이 바이든 행정부의 미군 철수를 유혈이 낭자한 모습으로 만들 것이라고 경고해 왔는데 현실이 됐다”고 했다.“IS 특유의 복잡성과 잔학성을 섞어 놓은 이번 공격은 미국과 탈레반 모두에 ‘누가 대통령궁에 있든 아프간에는 주도권 다툼이 있을 것이란 점을 상기시켰다”고도 했다. 탈레반과 IS-K 간에 더 길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이어질 것을 예고했다는 뜻이다.

카불 공항 자살 폭탄 테러

IS-K의 ‘K’는 ‘호라산(Khorasan)’의 약자로 페르시아어로 ‘태양이 오는 곳’을 뜻한다. 오늘날의 이란, 중앙아시아, 아프간, 파키스탄의 상당 부분을 아우르는 곳의 역사적 지명이 호라산이었다. 세계 전역에 극단적 이슬람 율법을 기반으로 하는 이슬람 신정국가(Caliphate)를 세우려고 했던 IS는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강성한 세력을 자랑하던 2015년 아프간에 일종의 지방정부 성격으로 ‘IS-K’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당시만 해도 IS-K는 세력이 미미했다.

하지만 미국과 동맹군의 진압 작전으로 본거지 이라크의 IS가 궤멸된 2017년부터 아프간에서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했다. 파키스탄과 인접한 아프간 동부 낭가하르주에 기반을 두고 2017~2018년 1년 사이에만 민간인 대상 테러 공격을 100건 이상 했다. 미군, 아프간군, 파키스탄군 그리고 탈레반과도 수백 차례 충돌했다. IS-K는 여전히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무장조직”이라고 27일 BBC 방송이 규정했다.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조직이란 점은 같지만 IS-K와 탈레반은 경쟁적 적대 관계다. USA투데이는 “IS-K는 탈레반이 이슬람 교리를 따르는 데 충분히 독실하지 못하다고 여긴다”며 “두 무장조직은 서로를 공격해 왔다”고 보도했다. 탈레반은 지난 15일 아프간 수도 카불을 장악한 뒤 카불의 교도소에 있던 수백명의 수감자를 석방했다. 그러나 수감돼 있던 IS-K의 옛 수장인 아부 오마르 호라사니와 8명의 IS-K 조직원은 풀어주지 않고 처형했다. 이런 원한이 서로 간에 쌓여 있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IS-K와 탈레반이 서로 “불구대천의 적(sworn enemy)”이라고 보도했다.

탈레반과 IS-K가 이처럼 대립하는 것은 이슬람 교리에 대한 이해 차이도 있지만, 아프간의 주도권을 둘러싼 다툼이기도 하다. BBC는 “아프가니스탄에 관심이 국한된 탈레반과 달리 IS-K는 서방과 국제적, 인도주의적 목표에 대한 공격을 무작위로 가하려는 세계적 이슬람국가 네트워크의 일부”라고 전했다. 어느 정도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 정부를 수립해 아프간을 통치하려는 탈레반과 달리, IS-K는 아프간을 테러 조직 운영의 기반으로 삼아 세력을 넓혀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탈레반과 IS-K) 양측에 수천 명의 외국 전투원이 가담하면서 피의 투쟁이 일어날 조짐이 보인다”고 보도했다. 지난 6월 공개된 국제연합(UN)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몇 달 사이 중앙아시아, 러시아의 북코카서스 지방, 파키스탄, 중국 서부의 신장 지역에서 8000~1만명의 무장 조직원이 아프간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대부분은 탈레반이나 알카에다에 가담했지만 IS-K에 합류한 이들도 있다. 전직 아프간 안보 관료인 알리 모하메드 알리는 뉴욕타임스에 “지금 아프간은 테러리스트들, 급진주의자와 극단주의자들의 라스베이거스가 되고 있다. 세계 전역의 급진주의자와 극단주의자들이 탈레반의 승리를 축하하는 가운데 다른 극단주의자들도 아프간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