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26일(현지 시각) 발생한 대규모 폭탄 테러로 아프간 협력자들은 물론 자국민의 대피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최대 위기에 처했다. 지난 15일 아프간이 이슬람 무장 단체 탈레반에 넘어간 데 이어 이날 테러로 인한 대규모 인명 피해로 그의 리더십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미 공화당에선 “바이든이 사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고, 국제사회에서 바이든의 리더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1월 출범 후, 아프간 주둔 미군의 철수 시점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의해 결정됐으며 이를 따르겠다는 입장을 천명해왔다. 바이든이 ‘완전 철군’을 발표한 지 4개월 만인 지난 15일 아프간 수도 카불이 탈레반 손에 들어가면서 자국민 대피 작전이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미 정보 당국의 ‘정보 실패’도 바이든 대통령의 ‘책임론’을 고조시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8일 아프간 관련 연설에서 “탈레반은 월맹군이 아니다. 역량이 그에 훨씬 못 미친다”며 “주아프간 미국 대사관의 지붕에서 사람들이 (헬리콥터로) 구조되는 모습을 보게 될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했었다. 그의 발언과 정반대로 한 달여 만에 탈레반이 카불을 접수하면서, 부정확한 상황 판단으로 아프간에 거주하는 자국민에 대한 대피 시기를 놓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더욱이 바이든 대통령은 테러 발생 이틀 전인 지난 24일 주요 7국(G7) 정상회의에서 영국과 프랑스 등 파병 동맹 국가들의 철군 ‘시한 연장’ 요구에 “(시한인 31일까지) 끝내기 위한 속도로 가고 있다”며 이를 거절했다. 그러나 이번 폭탄 테러로 시한 내에 미국은 아프간 협력자들은 물론 자국민을 대피시키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 영국 가디언은 “바이든은 유럽 정상들과의 단절된 관계의 상처에 소금까지 뿌렸다”고 했다.
아프간 사태는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모두 안정적 과반(過半) 확보를 목표로 하는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으로선 초대형 악재다. 특히, 미국이 아프간 협력자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기 위해서 탈레반에 이들의 명단을 제공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 내 입지마저도 뒤흔들릴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며 “전국 민주당원은 바이든 행정부가 워싱턴에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점점 더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당장 공화당에서 이번 사태를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 공화당 조시 홀리 상원의원과 마샤 블랙번 상원의원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했다. 취임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대통령에게 상원의원 2명이 퇴임을 요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홀리 의원은 성명에서 “(현 사태는) 바이든 대통령의 재앙적인 리더십 실패의 산물”이라며 “그는 이끌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고 했다. 미 포브스는 “현재까지 공화당 하원의원 최소 20명이 바이든 대통령 사퇴 또는 탄핵을 요구했다”고 했다.
바이든의 리더십 위기는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국제사회에서 ‘아메리칸 파워’의 약화로 연결돼 세계 각지에서 갈등과 충돌이 격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당장 중국은 대만을 상대로, 북한은 한국을 상대로 도발하면서 미국의 대응을 시험해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바이든은 주요 국가와의 동맹 관계를 회복시켜 중국과의 대응에 나선다는 전략을 내세웠지만 아프간 참사 이후 그의 구상은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최근 ‘(국제사회에서) 바이든의 신용은 아프간에서 갈가리 찢겨 버렸다’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한 것은 세계 각국이 바이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