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무장 단체 탈레반이 예상보다 빠르게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고, 아프간 주둔 미군 등 17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IS(이슬람국가)의 폭탄 테러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취임 8개월 만에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미국 안팎에서 바이든에 대한 비판이 커지는 가운데 아프간에 파견됐다가 오른쪽 눈을 잃은 댄 크렌쇼(37·텍사스) 연방 하원의원이 주목받고 있다. 특수부대 네이비실(해군 특전단) 대원으로 아프간에 파병됐다가 적의 습격으로 한쪽 눈을 잃은 그는 검은 안대를 두르고 의정 활동을 펼쳐왔는데 최근엔 어떤 공화당 의원보다도 많은 언론 인터뷰와 기고로 바이든 대통령에게 맞서고 있다.

댄 크렌쇼 공화당 연방 하원 의원이 지난달 26일 워싱턴DC에서 열린 한 집회에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크렌쇼 의원은 27일(현지 시각) 공화당 동료 의원 5명과 함께 미 정부의 탈레반 불승인 및 판지시르계곡 망명정부(Government-in-exile) 지원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탈레반에 축출된 기존 정부 병력과 북부 군벌 중심으로 결성된 저항군을 ‘망명정부’라고 부르고 공개적으로 지원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크렌쇼 의원은 법안 발의 후 “두말할 것도 없이 탈레반은 합법적인 정부가 아닌 테러 집단으로 수많은 아프간 민간인을 살상하고 중세 시대 율법을 강제한 책임이 있다”고 했다. 카불 함락 직후 아프간 기존 정부를 발 빠르게 ‘손절’하고, 탈레반을 사실상 집권 세력으로 용인한 바이든 행정부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크렌쇼는 석유 사업가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외국 생활을 하다가 콜롬비아에서 고교를 졸업했다. 터프츠대에 진학 후 해군 ROTC를 통해 임관했다. 네이비실 훈련 과정을 수료한 그는 이라크에 이어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됐다. 2012년 아프간 헬만드주에서 적의 급조 폭발물 공격을 받아 눈이 크게 손상됐고 양쪽 시력을 다 잃을 위기에 처했으나 가까스로 왼쪽 눈의 시력을 회복했다. 그는 시력 손상 후에도 현역 복무를 이어가다가 2016년 한국 근무를 끝으로 전역했다. 2년 뒤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고 지난해 재선에 성공했다. 손상된 오른쪽 눈을 가리는 검은 안대는 참전 용사이자 상이군인인 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그는 카불 함락 이틀 뒤 월스트리트저널에 ‘미국은 전쟁에서 진 것이 아니고, 하나의 전쟁을 끝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전략적인 국가 안보 이익을 포기한 것’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발표하며 바이든 행정부를 향한 포문을 열었다. 그는 “끝없는 전쟁들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며 철군을 공언한 바이든 행정부의 태도를 감성적 접근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의 지난 20년간 아프간 파병은 테러 집단 탈레반의 재집권을 막고 미국의 안보도 지키는 국익 챙기기였다는 것이 그의 논지다. 그는 “미군이 떠나면 탈레반이 재부상하고, 테러 집단에 은신처를 제공하게 된다는 것을 지도자들이 국민들에게 설명해서 납득시키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프간 사태가 격화하자 공화당 의원 중 가장 많은 대외 활동으로 바이든 정부 비판의 선봉에 섰다.

바이든의 아프간 철군 정책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프간 참전 상이용사인 크렌쇼는 더욱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24일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 인터뷰에서는 “바이든 정부는 탈레반에 철군 시한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며 “탈레반의 어떤 위협도 코웃음 치며 무시해야 한다”며 강경한 대응을 촉구했다. 27일 뉴스맥스 인터뷰에서는 “바이든과 그의 안보진은 ‘적들을 달래주면 우리에게 잘해줄 것’이라는 관점을 갖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탈레반은 이미 우리의 동맹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미국인들을 사냥할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정부에 대한) 초당적 분노가 일고 있다”며 “양당이 힘을 모아 미군의 철군 시한을 늦춰야 한다”고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