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31일(현지 시각) “꼭 이해해야 할 점은 세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중국과의 격심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란 현재와 미래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아프간이란 과거의 위협에서 물러났다는 취지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스테이트 다이닝 룸에서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에 관한 대국민 연설에 나서 “나는 이 영원한 전쟁을 더 연장하지 않으려 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대통령의 근본적 의무는 2001년의 위협이 아니라 2021년과 미래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방어하고 보호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그것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내 결정을 이끌어 낸 원칙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여러 영역에서 러시아의 도전을 받고 있다. 사이버 공격과 핵 확산에 직면해 있다”면서 “21세기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 이런 새로운 도전들에 대응하려면 미국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든의 이날 연설에는 아프간 철수에 대해 국내외에서 쏟아지는 비판을 반박하기 위한 대목이 많았다. 그는 “내 전임자는 탈레반과 합의를 했다. 내가 취임했을 때 5월 1일이란 철수 시한이 있었다”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미 철수 결정을 했던 점을 거론했다. 또 “우리는 오사마 빈 라덴에게 10년 전에 정의를 구현했다. 알카에다는 약해졌다”며 “우리가 아프간에서 하려던 일에는 10년 전에 성공했다”고 했다. 그는 “중국과 러시아가 이 경쟁에서 미국이 또 다른 10년을 아프간이란 수렁에 빠져 있는 것보다 더 원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이번 아프간에 관한 결정은 아프간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다른 나라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 중대한 군사 작전을 벌이던 시대의 종말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취임 초부터 중·러에 맞서는 데 더 집중하기 위해 아프간에서 철수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지난 4월 14일 아프간 철수 결정을 처음 발표할 때도 “점점 더 강경해지는 중국과 치열히 경쟁하기 위해 미국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레반의 진격 탓에 철수 결정을 번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던 지난 7월 8일 대국민 연설에서도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근 국내 지지율 추락과 유럽·아시아의 동맹국 등 국제사회의 비판 등으로 사면초가에 처한 바이든이 아프간이란 족쇄에서 벗어난 뒤 정치적 위기 탈출을 위해 중·러를 더 거세게 몰아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미국의 (아프간) 철수가 중국과 러시아에 새로운 문제를 안겨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순수한 군사력과 경제력에서는 미국이 여전히 우세하고 아프간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미국이 중국 및 러시아와의 전략적 경쟁에 투입할 자원을 더 많이 갖게 됐다는 뜻”이라고 했다. 또 아프간에 이웃한 러시아나 중국과 달리 미국이 탈레반의 장악 이후 발생할 난민, 테러, 마약 밀매 문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이제부터 아프간을 관리하는 것은 러시아와 중국의 문제”란 것이다.
미국은 ‘포스트 아프간’ 시대를 이끌 동력 확보를 위해 국제 동맹 재정비에 나서고 있다. 이달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 전후로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국 연합체 ‘쿼드(Quad)’ 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오는 12월엔 바이든 대통령 주도로 ‘민주주의 정상회의’도 열린다. 최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존 케리 기후변화특사,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 등이 동북·동남아시아를 계속해서 찾은 것도 중국과의 대결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에 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내부 결속 다지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시 주석은 1일 공산당 이론지 추스(求是) 기고문에서 “현재 중국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중대한 시기에 있다”며 “공산당 정신으로 무장해 모든 어려움과 위험을 이겨내고 더 크고 새로운 승리를 쟁취하자”고 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미국의 일부 엘리트는 아프간에서 철수한 자원으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환상을 품고 있다. 하지만 지난 2주 간 미국이 벌이는 바보 짓을 전 세계가 지켜봤다”며 “중국의 부흥을 막으려는 미국의 시도는 더 크게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