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을 수행해 유엔총회가 열리는 미국을 방문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2일(현지 시각) ‘중국이 공세적 외교를 펼치는 것은 당연하다’는 취지의 언급을 하면서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전날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중국의 반(反)민주주의 행보에 대응하기 위한 동맹 간 협력을 강조한 것과 다른 목소리를 낸 것이다.
정 장관은 이날 뉴욕 소재 싱크탱크인 미국외교협회(CFR) 초청 대담에서 ‘중국이 최근 공세적(assertive)인 모습을 보인다’는 지적에 “중국이 경제적으로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하다. 20년 전 중국이 아니다”라며 이같이 답했다. 정 장관은 “중국이 공세적이라는 표현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그들은 국제사회에 중국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중국이 주장하려는 것을 듣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할 것인가’란 질문엔 “어느 나라가 미·중 사이 선택을 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 특히 한국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정 장관은 진행자가 미국과 한국, 일본, 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핵심 동맹들을 ‘반중(反中) 블록’으로 지칭하자 “냉전 시대 사고방식”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정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지원과 종전 선언 구상과 관련, “북한이 실제 핵무기를 포기하리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어려운 질문”이라며 “대북 보상을 제안하는 데 소심할 필요가 없다. 덜 민감한 인도적 분야부터 지원을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미국은 아직 준비돼 있지 않지만 이제는 제재 완화를 고려할 시점”이라며 “북한이 4년간 모라토리엄(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유예)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 장관의 발언에 대해 국민의힘은 이날 “중국의 외교부장인가, 아니면 북한의 외무상인가.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한편 정 장관은 CFR 대담에 이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3국 외교장관 회의를 가졌다. 외교부는 세 장관이 한반도 상황을 평가하고 아프가니스탄·미얀마 상황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전했다. 한·미 외교장관은 뒤이어 열린 양자 회담에서 북한과 대화의 시급성에 공감하고, 창의적인 대북 관여 방안을 논의했다고 외교부는 덧붙였다. 최근 한·미 협의 때마다 중점적으로 논의된 대북 인도적 지원 문제는 외교부와 국무부 발표에서 모두 포함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