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학생과 성인의 산수를 비롯한 수학(數學) 능력이 주요 국가들 중에서 바닥권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선진국 모임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회원국의 18~29세 성인을 상대로 ‘수학의 어려움’을 묻는 질문에서, 미국은 ‘그렇다’는 대답이 29%로 조사 대상국들 중에서 가장 많았다.


2018년도 OECD가 78국의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수학 능력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미국은 37위였고, OECD 국가 중에선 꼴찌였다(한국은 7위).

그러나 미국은 과학‧기술‧공학‧수학 등 이른바 STEM 분야에서 계속 인재를 찾고 있고, 미국의 수학교사들도 수학 실력의 심각성을 잘 안다. 또 2차 대전을 앞두고는 부기(簿記)와 포격술을 위해, 1957년 소련이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고 1981년 일본 경제가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팽창했을 때에는 국가적 위기의식에서, 미국에서도 수학 교육 붐이 일었다. 그런데도 2020년 전미(全美)학력평가(NAEP)에서 13세 학생의 수학 능력은 2008년에 비해 5점이나 떨어졌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수학 교육의 방식을 놓고도, 보수주의와 진보주의 교육 방식이 다투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수학에도 ‘정치적 올바름’과 같은 좌파 문화가 들어가 “수학 교육을 거부(cancel)”한다고 비판했다.

1990년 이후 미국에서 수학 교육은 더욱 ‘정치적’이 됐다. 보수주의자들은 정해진 공식(알고리즘)에 따른 계산과 곱셈 구구단‧공식 암기, 교사가 주도하는 방식의 수학교육을 선호한다. 반대로, 진보주의자들은 공식과 암기보다는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둔 개념적 접근과 수에 대한 감각 익히기를 강조한다. 공식을 배우기 전에, 물체나 여러 도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여러 방식을 익히게 한다.

‘27+45′라는 간단한 덧셈 문제를 놓고, 보수주의자들은 1자리 수의 7+5를 먼저 더해 12를 얻고, 1을 10자리 수로 보내 1+2+4는 7을 얻어 72이라는 답을 도출한다. 전통적인 덧셈 공식이다. 그러나 진보주의 수학교사들은 27이 30에서 3이 모자라므로 일단 30+45를 하고 그 합(75)에서 3을 빼 72를 얻거나, 20+40에서 60을 얻고 여기에 1자리 수의 합 12를 더하는(60+12) 방식 등 여러 접근 방식을 선호한다.

PISA 성적이 좋은 나라의 수학 교육법을 모방하는 것도 쉽지 않다. 미국의 수학교육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특정 국가의 수학교육이 공식 암기식인지, 개념적인지’를 놓고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의 수학 교육 선진국들은 두 접근 방식을 절충한다.

설상가상으로, 진보주의 행동가들은 수학의 ‘개념적 접근’이 이제 ‘사회 정의’ 차원의 수학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수학이 현실 세계의 여러 사안을 풀고 주변 세계를 평가하는데 도움이 돼야 하며, 사회 문제에 의식이 ‘깬 수학(woke math)’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주 교육부는 지난 8월 유치원에서 12학년생(K-12)까지 적용되는 ‘수학교육 지침(framework)’을 개정했다. 이 지침은 수학 시간에 교사가 학생들의 실수를 정확하게 지적하는 것, 옳은 답을 내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 공식에 따라 수학을 가르치는 것, 학생들에게 답과 도출 과정을 보이게 하는 것, ‘주관적’ 사안에 대해 채점을 하는 것은 모두 “백인우월주의 문화의 표출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학이 순전히 객관적일 수 있다는 개념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고, 항상 옳은 답과 틀린 답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객관성’을 영구화하며 이는 인종차별적”이라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2+2=4라고 가르치는 것이 인종차별적이 될 수 있다는 지침이었다.

이 지침은 또 미국의 많은 주의 학교에서 실시하는 ‘영재(gifted and talented)’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여기에 선발되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불공평’하고, 나중에 이 프로그램에서 탈락한 아이들도 자아가 상처 받는다며 반대했다. 이 새 지침에 대해 캘리포니아 주의 한 수학 교사는 WSJ에 “사회적으로 깨 있다는 자들은 현실과 동떨어져 자기들이 만든 꿈 속에서 산다”며 “이렇게 되면 아이들이 더 이상 수학을 못하게 될 뿐 아니라, 나라의 STEM 교육이 종이집처럼 무너진다”고 비난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수학교육 논쟁은 마치 정치처럼, 양극으로 치닫고 혼란스러워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