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18일 “내년 초 중국에 맞서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 및 우방국과 새로운 경제 틀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5일 일본 방문에 이어 18일 방한한 타이 대표가 중국을 포위하는 미국 주도의 새 기술·경제 동맹 구축 방침을 분명히 한 것이다. 중국을 배제한 새로운 인도·태평양 경제 동맹이 추진되면서, 대중 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받는 상황에 점점 더 맞닥뜨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타이 대표는 방한에 앞서 18일 일본 NHK 인터뷰에서 “우리는 중국의 위협이라는 과제에 직면해있다”며 “경제적 이익을 지키고 이해를 공유하는 동맹 및 우방국과 연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형태의 경제 틀 구축 의사를 밝힌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 구상은 반도체 등 글로벌 공급망 구축 등의 사안에서 주요 동맹을 규합, 중국 중심 경제 의존을 줄이게 하고 대중 경제 포위망을 강화하겠다는 의미여서 앞으로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타이 대표는 NHK 인터뷰에서 과거 미국과 일본이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주도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재편된 형태의 다자 협의엔 복귀할 의사가 없음도 분명히 했다. 트럼프 정부가 2017년 TPP에서 탈퇴하면서 일본 등 아시아·태평양 11국이 다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추진했는데, 미국이 빠진 자리에 중국이 가입하게 됐다. CPTPP가 미국의 동맹과 비동맹을 아우르는 대규모 무역협정으로 성격이 바뀐 것이다. 타이는 이날 “(CPTPP는) 5년 전에 논의된 것이라 그보다는 지금 직면한 과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언급, 미국 중심의 소수 정예 경제동맹체 구성을 새롭게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타이 대표는 1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6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에서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과 만나 내년 3월 10주년을 맞이하는 한미 FTA 이행 상황을 점검하면서도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한미 양측은 이날 공급망 등 신통상 이슈를 협의하고, 관련 사안을 다룰 정부 실무진급 소위원회를 만드는 데에 합의했다. 타이 대표와 여 본부장은 회의를 마친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전 세계가 직면하는 통상 현안에 대한 대응을 목적으로 통상 관련 공급망, 신기술, 디지털 생태계 및 무역 활성화 등 주요 신통상 이슈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강화된 협의 채널을 통해 새롭게 접근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또 “공동번영 달성을 위한 지속가능하고, 회복력 있으며, 포괄적이고, 경쟁력 있는 통상정책의 수립 필요성에 대해 논의했다”고 했다.
타이 대표는 20일에는 국내 주요 대기업 관계자들과 만난다. 타이 대표가 이 자리에서 반도체·배터리 등의 분야에서 미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에 협조를 당부할 가능성이 있다. USTR은 통상 정책 방향을 설명하는 자리일 뿐이라는 입장이지만, 중국에 주요 생산기지를 두거나 중국에서 각종 원자재·부품을 들여오는 국내 기업들로서는 미·중 사이에서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앞서 타이 대표는 지난 17일 도쿄에서 하기우다 고이치 일본 경제산업상과 가진 회담에서 ‘미·일 통상협력 틀’을 설치하고, 내년 초부터 양국의 국장급 고위공무원이 참여하는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미·일 양국 간에 논의 중인 새로운 통상협력 틀은 양국의 글로벌 어젠다는 물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협력을 주로 다룰 예정이다. 일본, 싱가포르 등 아시아를 순방 중인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도 “내년 초에 인도·태평양 지역의 새 경제틀 구성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인도·태평양에서 구축하는 새로운 통상 협의체엔 일본이 핵심 파트너로 포함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은 또 반중 협의체 성격의 쿼드(QUAD) 멤버인 호주와 인도에도 참여를 독려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역시 동참 요청을 받을 가능성이 커 중국의 견제가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