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미국 뉴욕주 대법원은 40년 전 시라큐스 시의 한 공원에서 발생한 강간 사건과 관련해, 61세 된 한 흑인 남성에게 씌워진 1급 강간 및 5건의 관련 범죄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1981년 미국 뉴욕주 시라큐스의 한 공원에서 앨리스 시볼드(Sebold)라는 시라큐스대 1학년인 한 백인 여학생이 성폭행을 당했다. 그 뒤 시볼드는 1999년에 자신이 겪은 끔찍한 일과 이후의 재판 과정을 담은 회고록 ‘럭키(Lucky)’를 출간했고, 이 책으로 그는 미국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또 10대 소녀의 성폭행 피해를 소재로 다룬 소설 ‘러블리 본즈(Lovely Bones)’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책은 세계적으로 수백만 권이 팔렸고, 우리나라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강간범으로 지목된 앤서니 J 브로드워터는 해병대를 갓 나온 같은 학교 1학년생 흑인이었다. 브로드워터의 ‘잘못’이라면, 성폭행 사건 5개월이 지나 우연히 캠퍼스에서 마주친 시볼드에게 “이봐요, 혹시 우리 전에 어디서 본 적 없나요?”라고 말을 건넨 것이었다. 시볼드는 회고록에 “그는 웃으며 다가왔고, 나를 알아봤다. 그는 공원을 산책하다가, 아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나는 말없이 그를 정면으로 봤다. 그의 얼굴은 터널에서 나를 범했던 그 얼굴이었다”고 썼다.
하지만, 시볼드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브로드워터를 포함해 여러 흑인 용의자들을 세워놨을 때에 시볼드는 다른 사람을 지목했다. 그리고 법정에선 다시 브로드워터가 범인이라고 주장했다.
브로드워터의 범죄를 증명할 ‘증거’라고는 현장에서 수집한 체모(體毛)밖에 없었다. DNA 검사는 미국에서도 1986년에 처음 수사에 도입됐다. 하지만 체모를 현미경으로 분석해 용의자의 것과 비슷한지 판정하는 방식은 오류가 많아, 미 법무부도 2015년 ‘현미경 이용 체모 비교’ 방식의 문제점을 공식 인정했다. 미국에선 체모 분석으로 유죄를 선고 받은 뒤, 나중에 DNA 검사로 무죄로 입증된 경우가 300건이 넘는다.
1999년 시볼드가 회고록 ‘럭키’로 유명 작가가 된 무렵, ‘성폭행범’ 브로드워터도 16년의 징역형을 마쳤다. 그는 계속 무죄를 주장했지만, 믿어주는 이는 드물었다. 돈을 모아 계속 변호사를 고용했지만 실패했다. 최근까지도 뉴욕주 성폭행범 명단에 등록된 그는 일자리 얻기도 힘들었다. 브로드워터는 무죄 선고를 받고 지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집에 나를 초대해 함께 저녁을 먹은 사람이 열 손가락도 못 채운다”며 “정말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결혼했지만, 자녀는 포기했다. 브로드워터는 “아내는 아이들을 원했지만, ‘성폭행범’ 아버지의 낙인을 남길 수는 없었다”고 했다.
이런 브로드워터의 무죄를 입증해 낸 1등공신은 뜻밖에도, 현재 진행 중인 시볼드의 회고록 ‘럭키’의 영화 제작에 초기 참여했던 프로듀서 티머시 무치안테였다. 무치안테는 재판 부분의 스토리를 읽다가 브로드워터의 유죄에 의문을 품었다. 그는 영화 제작에서 손을 떼고 자기 돈으로 그 지역의 베테랑 경찰 출신 탐정을 고용해 브로드워터의 유죄를 판정한 ‘증거들’을 들여다보게 했다. 결국 ‘증거’라는 것이 모두 ‘엉터리 과학’이란 확신이 들자, 브로드워터에게 알리고 좋은 변호사를 추천했다. 뉴욕주 지방검사도 그의 무죄 입증에 합세했다. 검사는 22일 “이 재판은 처음부터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고 했다. 검사는 “범인이 모르는 사람이고 인종도 다를 경우, 피해자의 범인 인상에 대한 진술이 종종 신뢰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브로드워터는 미 언론 인터뷰에서 “이날을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왔다”며, “그저 시볼드씨가 내게 와 ‘이봐요, 내가 정말 엄청난 실수를 했어요’라고 사과하기만 바라고 기도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볼드의 처지를 공감하지만, 그가 분명히 틀렸다”고 했다.
그러나 작가 시볼드는 무죄 판결 이후 쏟아진 미국 언론의 문의에 아무런 코멘트를 내놓지 않았다. 회고록 ‘럭키’를 낸 출판사는 소설 내용을 수정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럭키’의 영화 제작 작업이 어떻게 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