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일본과의 철강 관세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제한적 무관세 적용 방식의 해결책을 일본에 제시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13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앞서 미국은 EU에 부과했던 고율의 철강 관세를 없애고 연간 수입량 평균치에 해당하는 물량은 무관세를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조치는 안보에 이어 반도체 등 경제 분야에서도 반중(反中) 전선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17일 일본을 방문한 캐서린 타이(왼쪽)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수도 도쿄에서 하기우다 고이치(오른쪽) 일본 경제산업상과 경제·통상 부문 현안을 논의하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미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10일 일본 정부에 일정한 양의 철강과 알루미늄을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하는 방식의 타결안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는 미국과 EU가 합의했던 것과 유사하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3월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일본과 EU, 중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 10%의 관세를 부과했었다. 이 규정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명분이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외국산 수입 제품이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하면 긴급하게 수입을 제한하거나 고율 관세를 매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에 반발한 EU는 같은 해 6월 버번 위스키, 리바이스 청바지, 할리 데이비드슨 오토바이 등 미국의 대표적인 제품에 25%의 보복관세를 부과하며 맞대응했다.

바이든 행정부도 초기 ‘미국 우선주의’라는 보호무역 색채와 중국 견제 기조를 전임과 마찬가지로 이어가면서 해당 조항을 유지했었다. 그러다 작년 10월 EU와 일정한 쿼터 안에서 관세를 없애는 대신 EU는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를 철회하는 내용의 분쟁 해소 방안을 마련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부과했을 당시, 일본은 생산한 철강 제품 가운데 대미 수출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5%에 그쳐 별도로 대응하진 않았다. 다만, 일본 또한 대미 철강 수출량이 2017년 170만t(톤)에서 지난해 73만t으로 급격히 줄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EU와의 철강 관세 분쟁 합의에 대해 “더러운(dirty) 중국산 철강”을 제한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었다. 중국이 탄소 감축 노력을 하지 않고, 공급 과잉을 초래한다는 이유인데 여타 국가가 중국산 철강을 가공해 수출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실제 미·EU 철강 합의문엔 중국을 겨냥한 듯한 표현인 ‘비시장(non-marktet)’, 미·일이 철강 합의 통상 합의체를 만들때에도 ‘중국’이 언급됐었다.

미국이 이렇게 EU에 이어 일본과의 철강 분쟁 협상에 나섰지만, 한국의 재협상 요청엔 묵묵부답이다. 미국은 한국엔 연간 대미 철강 수출물량을 과거 3년(2015~2017년) 평균의 70%로 제한했었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지난달 9일 방미 일정 중 리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과의 회담에서 철강 재협상을 요청했다.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도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방한 일정 당시 같은 요구를 했다.

이를 두고 미국이 미·중간 ‘줄타기 외교’를 고집하는 한국과 협상할 마음이 없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우리 정부도 ‘중국과의 대결’을 언급하면서 미국과 합의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이 주도하는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과 관련해 “한국 정부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