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계속해서 제재를 회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들이 있음에도 새로운 대북 제재는 2017년 이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 그리고 러시아 때문입니다. 중국은 러시아의 지원을 업고 의도적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체제를 교란하려 하고 있습니다.”
애론 아놀드 전(前) 유엔(UN)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위원은 지난달부터 최근까지 본지와 두 차례 진행한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그는 2019년 11월부터 약 2년간 미국 대표로 전문가 패널에서 활동해온 제재 및 비확산 전문가다. 현재 영국 합동군사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그는 국내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본지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북한이 제재를 회피하고 있다는 (유엔 패널 내부의) 압도적인 증거 제시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계속해서 제재위 회원국 및 전문가 패널 모두의 대북 제재 추가 지정 제안을 막고 있다”며 “이는 중국에게 북한은 서방 국가들로부터의 편리한 완충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 내부가 급변하지 않고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 정부에 대해서 아놀드 전 위원은 “국제 사회가 언제나 한국 정부를 좀 더 면밀히 조사할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대북 제재를 충실하게 이행하기 위한 강한 의지를 계속해서 보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안보리 제재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이 경제 상황 악화에도 불구하고 2021년 상반기에 핵, 탄도미사일 개발을 계속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어떻게 다중 제재 시스템 하에서도 계속 핵무기를 계속 개발하고 고도화하고 있나?
“북한은 오래되고 정교한 제재·회피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북한을 세계 경제와 연결 시키고 미사일과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북한의 불법적인 수익 창출 활동들 중 일부는 다소 ‘로우 리스크(저위험), 하이 리턴(고수익)’의 성격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랜섬 웨어 해킹을 통한 ‘암호 화폐’ 절도로 2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는데, 이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그리고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부품 중 일부는 해외에서 조달된 뒤 위장 회사와 위장 중개 기업들의 치밀한 네트워크를 통해 북한으로 밀반입되고 있다. 북한이 주로 러시아와 중국을 통해 이러한 물품들을 쉽게 조달할 수 있게 된 것은 민간 및 군용 목적을 모두 가진 상품을 뜻하는 이중 용도 품목(dual-use goods)에 대해 진지하게 감시를 할 필요가 있음을 알려준다.”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최근 유엔본부에서 기자들과 만나 ‘유엔이 북한에 대해 제재를 이행하고 집행하는 유엔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린필드 대사의 말이 맞는다. 유엔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 북한이 계속해서 제재를 회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회원국들과 전문가 위원회에 의해 제공된 명확한 문서 증거에도 불구하고, 2017년 이후 새로운 대북 제재 지정이 없었다. 왜 중국과 러시아 두 회원국만이 ‘북한이 제재를 계속해서 회피하고 있다’는 분명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가 나와도 (제재 지정 등을) 고려하는 것을 거부하는가?”
-왜 유엔이 추가 제재를 지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는 1718위원회(2006년 유엔 안보리의 첫 대북 제재 결의인 1718호에 따라 설립된 대북제재위원회의 별칭) 내부의 정치적 정체 상태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와 중국이 강력하고 효과적인 제재 체제를 유지하는데 관심이 없게 된 것은 분명하다. (이를 넘어) 중국은 러시아의 지원을 업고 의도적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체제를 교란하려 하고 있다. 북한이 제재를 회피하고 있다는 (패널들의) 압도적인 증거 제시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계속해서 제재위 회원국 및 전문가 패널 모두의 대북 제재 추가 지정 제안을 막고 있다.
이는 중국에게 북한은 서방 국가들로부터의 편리한 완충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 내부가 급변하지 않고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것은 그런 그들의 목표를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중국과 러시아는 해산물과 섬유, 조형물 수출 금지 해제를 비롯해 북한의 정제유 수입 할당량 해제 등 북한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이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어떻게 생각하나?
“중국과 러시아가 제안하는 안(案) 범위가 너무 넓다. 또한 이는 북한이 안 그래도 희박한 자국의 자원을 핵무기와 탄도 미사일 계획에 전용하거나, 북한 당국이 국채발행을 통해 거둔 돈으로 김정은을 위한 궁전 짓기나 엘리트들에게 돈을 뿌리는 등 일명 ‘흰코끼리 프로젝트(white-elephant projects)’에 엉뚱하게 투입해왔던 그간의 역사를 무시한 것이다. 해외 노동 금지령을 해제하면 민간인의 삶이 향상된다는 생각은 완전히 말도 안 된다. 끔찍한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 해외 노동자들의 수입은 수백만 명이 굶주리는 동안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의 추가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진다는 것을 모르나.”
-비슷한 관점에서, 한국의 몇몇 정치인들은 유엔과 미국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기 위해 어느 정도 대북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복귀시키기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아이디어는 불합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센티브가 무조건적일 수는 없다. 지금까지, 북한은 무조건 모든 제재를 해제하는 것 이상의 어떤 것도 협상할 용의가 있다는 뜻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국제 사회가 단결해 대북 제재를 유지하는 데 있어 한국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나?
“한국은 역사적, 지리적 유대 관계 때문에 북한에 대한 제재를 유지하고 이행하는데 특별한 역할을 한다. 국제 사회가 언제나 한국 정부를 좀 더 면밀히 조사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대북 제재를 충실하게 이행하기 위한 강한 의지를 계속해서 보여야 할 것이다.”
-유엔 패널로 있을 당시 북한의 사이버 공격의 대상이 된 적이 있나?
“전문가 패널들은 북한 해킹 요원들로부터 피싱 이메일을 받는 것이 일상이다. 대부분의 경우 피싱 이메일은 대개 정교하지 않다. 그러나 일부 해킹 공격들은 좀 더 복잡하다. 이 때문에 우리는 매번 이메일에 첨부돼 있는 링크나 파일들이 혹시 악성 코드를 갖고 있는 지 조사한다. (메일이 발송된) IP 주소를 식별하면 해당 주소가 속한 국가, 위치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기록한다. 때로는 북한 사이버 해커들이 인터넷 트래픽을 다른 나라에서 온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VPN을 통해 IP 주소를 우회할 때도 많다.”
-북한의 해킹 수법이 계속 발달하고 있나.
“북한이 유엔 대북 제재 위원회 소속 패널들을 해킹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회 공학적 요소들이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 단순히 피싱 이메일을 보내는 게 아니라 소셜 네트워크를 분석해 해킹 대상이 되는 사람의 관계망 속에서 어떤 사람들이 중요하고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지 분석한다. 이후 그들의 이메일 계정을 해킹해 타깃에게 접근하거나, 그들의 이름을 포함 시킨 이메일 계정을 만들어 마치 그들인 것처럼 접근하는 등 점점 더 해킹 시도 여부를 구분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내가 당신에게 소셜미디어인 링크드인(linkedin) 서비스를 통해 친구 신청을 한 뒤 수락하기까지 4일이 걸렸다. 이 것도 혹시 북한의 피싱 시도라고 의심했나. 내가 진짜 기자인지 별도의 조사를 한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다. 불쾌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당신이 기자가 맞는 지 확실히 하기 위해 조사를 좀 했다. 왜냐하면 북한 해커들이 기자들이나 한국의 씽크탱크 전문가를 사칭해 접근해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패널 조사에 따르면 특히 한국이 북한 해킹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나 은행이 특히 ‘쉬운 타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한국은 북한과 같은 언어, 관습, 규범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이를 목표로 삼는 것은 자연스러울 뿐이다. 예를 들어 북한의 주요 타깃인 암호화폐 거래소에 침투하기 위해 북한 해커들은 한국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데 서방 국가를 상대로 하는 것보다는 쉬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