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공개’ 판결에도, 청와대가 “공익을 해친다”고 공개를 거부한 대통령 부인(First Lady)의 의상비와 재원(財源)은 미국에서도 관심사항이다. 미국 역대 백악관의 안주인들이 공식 행사에서 착용한 의상과 핸드백, 구두, 각종 액세서리의 디자이너와 가격, 비용의 출처를 미국인들도 궁금해한다.
그래서 질 바이든이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입었던 디자이너 브랜던 맥스웰의 점무늬 드레스는 1390달러짜리이고, 같은 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만난 자리에서 입었던 푸른색 투피스 정장은 애덤 립스가 디자인한 1000달러짜리 의상이라는 식으로, 미 언론은 퍼스트레이디가 착용한 의상에 대해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보도한다.
특히 패션 감각이 뛰어났던 미셸 오바마와 모델 출신이었던 멜라니아 트럼프의 의상은 가격이 수천~수만 달러(수백만~수천만 원)에 달해, 이 의상을 구입하는 데에 세금이 쓰였느냐는 질문이 늘 따랐다. 2018년 8월 멜라니아 트럼프가 백악관 잔디밭에 묘목을 심기 위해 삽을 뜨는 행사에 나오면서 굽이 4인치나 되는 스틸레토 힐을 신고 4000달러짜리 빌렌티노 꽃무니 옷을 입고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 대통령 부인의 의상비는 본인이 직접 지불한다. 미국의 퍼스트레이디는 공식 행사에서 옷을 잘 입어야 하는데도, ‘공직(公職)’이 아니라 별도의 의상비나 월급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본인이 지불해도, 의상비가 때때로 워낙 고가(高價)이다 보니 백악관도 이를 언급하기를 꺼린다.
멜라니아의 대변인이었던 스테파니 그리샴은 “세금이 아니라, 모두 멜라니아 트럼프가 자기 돈으로 산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W 매거진에 따르면, 멜라니아가 백악관 안주인 시절 착용한 의상과 소품의 상당수는 이미 소장하고 있던 것들이었다.
미셸 오바마는 잘 나가는 로펌 변호사였다. 남편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던 2013년 부부의 연소득은 48만1000달러(약6억원)이었고, 부부 재산은 최대 700만 달러(약85억원)에 달했다. 그의 공보비서였던 조애너 로숌도 “오바마 여사가 자기 돈으로 산다”고 말했다.
유명 디자이너들의 의상은 종종 소매 가격보다 훨씬 싼 가격에 팔린다. 역대 퍼스트레이디들도 이들 디자이너의 기성복∙맞춤복을 ‘할인된’ 가격에 산다. 그러나 일반 부호들이 사는 것보다 퍼스트레이디가 사는 가격이 훨씬 낮으면 ‘대가성(代價性) 뇌물’로 간주돼, 백악관 법률가들은 윤리 규정에 어긋나지 않도록 신경 쓴다.
◇선물로 받은 의상은 국가기록관리청으로
일부는 유명 디자이너로부터 ‘선물’로 받기도 한다. 미셸 오바마의 공보비서 로숌은 “해외 국빈 방문과 같이 역사적∙공적 의미가 있는 행사에서 입는 옷은 디자이너가 미국 정부에 주는 선물로 간주해 받고, 나중에 미 국립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으로 보낸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미셀 오바마가 남편의 두 차례 대통령 취임식 때 입었던 의상은 당시로선 유명하지 않았던 대만계 디자이너 제이슨 우가 제작한 것이었다. 디자이너들은 자기 이름을 알리려고, 선물한다. 2010년 3월 미셸은 버락 오바마의 첫번째 취임식 때 입었던 의상을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뮤지엄에 기증했다. 미셸은 당시 기증식에서 “오늘 내가 기증하는 옷은 제이슨 우가 만든 걸작”이라고 밝혔지만, 나중에 뮤지엄 측은 “이 옷의 기증자는 제이슨 우”라고 정정했다.
힐러리 클린턴이 1993년 남편 빌 클린턴의 취임식때 입었던 의상은 5만 달러짜리였다.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에서 1만 달러를 냈고, 이 옷은 나중에 힐러리 클린턴과 대통령취임준비위(委) 이름으로 스미소니언 뮤지엄에 기증됐다. 로널드 레이건의 부인 낸시 레이건은 종종 옷값을 지불하지 않고, 선물로 받은 옷도 정확히 신고하지 않아 원성을 샀다.
◇미 퍼스트레이디들, 의상비 때문에 늘 고민
사실 디자이너 ‘선물’도 미셸 오바마 때 시작한 관행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 부시의 비서실장이었던 애니타 맥브라이드는 “로라 부시가 모든 의상비를 직접 지불했다”고 말했다. 로라 부시는 나중에 회고록에 “처음 백악관에 들어가서 내가 사야 하는 디자이너 옷들의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썼다.
프랑스 패션에 푹 빠진 재클린 케네디의 의상비는 시아버지인 보스턴의 부호 조지프 P 케네디가 댔다. 재클린의 값비싼 의상이 논란이 되자, 혹시라도 아들 존 F 케네디에게 정치적 약점이 될까봐 걱정했다.
제럴드 포드의 부인 베티 포드는 종종 10대 딸과 옷을 바꿔 입었다. 한번은 의상 한 벌 당 가격이 70달러 이하이고 재주도 좋다는 뉴욕의 한 디자이너를 소개 받아, 도쿄 방문 때 여러 벌을 가져갔다.
사치가 심했던 에이브러햄 링컨의 부인 메리 토드 링컨은 남편도 모르는 2만7000달러(현재 가치 70만 달러)에 달하는 의상비를 마련하려고 공화당 유력 정치인들에게 돈을 빌렸다. 그러고도 돈이 모자라, 백악관 잔디밭에서 거름을 만들어 팔까 생각도 했다.
멜라니아 트럼프는 2018년 7월, 가족 사진 중 일부를 좋은 내용의 보도에만 쓰는 조건을 걸어 게티이미지에 팔았다. 당시 미 언론은 수십만 달러(수억 원) 선에서 거래가 된 것으로 보도했다.
◇기존 옷의 조합도 바꿔보며 변화 시도하지만
퍼스트레이디들은 같은 옷에 벨트 등 다른 액세서리를 착용하거나, 옷의 조합을 바꿔 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로라 부시는 한 TV 방송국에 인터뷰하러 갔다가, 그 방송국 벽에 당시 입고 있던 것과 같은 옷을 입은 자신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부시 여사는 “옷이 많은 것처럼 보이려고, 그 자리에서 공보비서와 옷을 바꿔 입었다”고 회고록에 썼다.
로라 부시는 한번은 8500달러짜리 “완벽해 보이는” 붉은색 원피스 기성복을 샀다. ‘누가 백악관 행사에 똑같은 옷을 입고 오겠어’ 싶었다. 그날 행사에 3명의 다른 여성이 같은 옷을 입고 나타났다. 로라 부시는 바로 윗층으로 올라가 푸른색으로 갈아 입어야 했다.
미 백악관에선 대통령 부부∙가족이 사적으로 먹는 식자재 비용도 대통령 부부가 낸다. 이는 백악관의 첫 주인이었던 존 애덤스(2대 대통령∙1797~1801)때부터 시작한 관행이다. 당시 백악관엔 별도 직원이 한 명도 없었고, 애덤스는 자신이 고용한 직원들을 데려와야 했다. 이후 세금으로 부담하는 백악관 운영 관련 비용은 늘어났지만, 사적인 경비는 여전히 백악관 ‘세입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