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급격한 물가 상승이 또 한 번 기록을 경신했다. 미 노동부는 12일(현지 시각) 지난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8.5% 올랐다고 발표했다. 이는 초(超)인플레이션이 지배하던 1981년 12월 이래 41년만의 최고치다. 지난 2월 CPI 상승률은 7.9%로 1982년 1월 이래 40년 만의 최고치였는데, 이 기록을 한 달 만에 또 갈아 치운 것이다. 미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을 위해 큰 폭의 금리 인상 등 고강도 긴축에 나설 것이 확실시되면서 세계 경제에 충격파가 예상된다.

CPI는 주택 임차료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며, 휘발유·전기 등 에너지 비용과 식료품, 의료비, 의복비 등으로 이뤄진다. 3월 소비자물가에선 특히 에너지 부문 CPI가 32%나 급등했고, 식품 가격도 8.8% 상승했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물가 상승률도 6.5%에 달했다.

이런 역대급 물가 상승의 근본 원인은 코로나 팬데믹이 3년 차에 접어들면서 각종 수요는 폭발하는 반면, 중국의 강력한 방역과 봉쇄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 교란이 계속되고 구인난에 따른 임금 인상이 한꺼번에 작용한 결과다. 여기에 2월 하순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시장에서 에너지 가격과 식량 가격이 오르면서 관련된 생활 물가를 모두 밀어올렸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극심한 인플레는 우선 미국의 통화·재정 정책은 물론 세계 경제에 충격파를 던질 전망이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물가 안정을 위해 큰 폭의 금리 인상은 물론, 채권 등 자산 매각을 통한 대차대조표 축소 등 고강도 긴축을 예고하고 있다. 연준이 지난달 팬데믹 이래 처음으로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가운데, 다음 달 두 번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선 0.5%포인트의 ‘빅 스텝’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등 올해 7번의 FOMC에서 매번 금리 인상 결정을 내릴 전망이다. 월가에서는 연준이 연말까지 연 2.25~2.5% 수준까지 금리를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한다.

금리 인상으로 은행이 시중의 돈줄을 빨아들이면 증권시장은 위축된다. CPI 발표를 하루 앞둔 11일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일제히 하락했다. 금리에 가장 민감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2.18% 급락했다. 역시 팬데믹 와중에 제로 금리의 수혜를 봤던 비트코인 거래가도 4만달러 선 아래로 떨어졌다. 강(强)달러가 예상되면서 환율도 요동치고 있다. 12일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3.1원 오른 달러당 1236.2원에 마감했다.

미국의 물가는 또 오는 11월 미 중간선거를 지배하는 핵심 이슈가 될 전망이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물가지수 발표를 하루 앞둔 11일 정례 브리핑에서 “3월 CPI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때문에 벌어진 물가 상승 탓에 엄청난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3월 물가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제재로 인한 국제 원유·천연가스 가격 상승,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산 곡물 공급 부족 등에 따른 현상이란 게 바이든 정부의 입장이다. 반면 공화당은 물가 상승은 지난해부터 바이든 정부의 무분별한 돈 풀기와 기업 규제 등으로 인한 현상으로 ‘민주당 정부의 정책 실패’라고 맹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