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전 대통령 때부터 인권, 대만 문제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격렬하게 충돌한 미국과 중국이 일부 이슈에서 갈등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모두 심각한 국내 정치적 상황에 발목을 잡혀 상호 확전을 꺼리며 손을 잡으려는 동향이 감지된다.

달라진 분위기는 우선 무역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최근 중국과의 무역 전쟁에서 한발 물러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빨간불이 들어오자 ‘고물가 해소’ 차원에서 대중 고율 관세를 완화하는 방안을 테이블에 올린 것이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브리핑에서 “전임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시행된 (대중) 고율 관세의 일부는 전략적이지도 않고 미국인들의 비용을 증가시켰다”며 “(대중) 관세가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USTR(무역대표부)이 면밀히 검토 중”이라고 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도 “(대중 관세 완화는) 고려할 만하다. 바람직한 (물가 인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 폴리티코는 “바이든 대통령이 무역법 301조를 발동해 관세 완화 조치를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301조는 의회의 동의를 받지 않고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발동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트럼프식 대중 무역 정책이 역효과를 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취임 이후 고율 관세를 유지하기로 한 데 이어, 추가 관세 부가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트럼프 정책보다 더 독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달 들어 ‘검토 중’이라고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런 변화는 40년 만의 기록적 인플레이션 압박 등 경제 위기로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어떤 수를 써서라도 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백악관 내 다급한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이 지난달 말 유권자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94%가 인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있다고 응답했고, 68%는 바이든 물가 정책에 부정적이라고 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때인 지난 2018년 7월 중국산 제품 2200여 개에 ‘관세 폭탄’을 투하하면서 중국과 무역 전쟁을 시작했다. 미 산업계 곳곳에서 부작용을 호소하자 2020년 중국이 2년간 미국 제품을 2017년 대비 2000억달러(약 249조원) 추가 구매하고 미국은 대중 관세를 일부 완화하는 내용의 1단계 무역 합의를 통해 ‘휴전’했다. 그해 말 549개 품목을 제외한 나머지 제품에 대해 관세 예외를 적용하고 있으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미 산업계에서 제기돼왔다. 당분간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정면 대결하는데 집중할 계획이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과는 갈등을 최소화함으로써, 중국과 러시아가 연대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전략도 작용하고 있다.

중국도 미국의 입장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올가을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확정하는 20차 공산당 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중국은 최근 상하이 봉쇄 등 잇따른 코로나 악수(惡手)로 큰 곤경에 처해 있다. 중국 상무부 가오펑 대변인은 지난달 28일 “(미 정부가 관세 완화를 고려한다는) 관련 보도에 주목하고 있었다”며 “고(高)인플레이션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산 상품에 추가 부과했던 관세를 취소하는 것은 미국 기업과 소비자의 근본 이익에도 부합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진핑 주석은 최근 열린 중국공산당 회의에서 “대외 개방 수준을 높여 국제 자본의 중국 투자를 이끌어 내고, 중국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지, 격려해야 한다”며 미국과 협력하겠다는 뜻을 시사하기도 했다.

미·중 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도 초기 가시 돋친 설전을 벌였으나 최근 자제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은 3월까지만 해도 바이든 대통령과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등이 잇따라 중국에 “러시아를 지원하지 말라”고 경고하곤 했지만 그 이후엔 이런 공격적인 모습이 사라졌다. 중국도 미국을 자극하는 언사를 자제하고 있다.

미·중 간 갈등 전선(戰線)이 경제·통상뿐만 아니라 안보 등 전 분야에서 심화되고 있어 양국의 관계 개선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관측도 만만치 않다. 미 행정부 및 워싱턴 정가에서는 “대중 견제 지렛대를 먼저 포기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대중 관세 완화에 부정적인 기류가 많다. 실제로 USTR은 “중국과 통상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먼저 관세를 내리는 건 협상 레버리지를 잃게 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 관세 완화 결정이 실제 내려지더라도 미·중 간 갈등 완화가 길게 계속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도 있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대만·인권 침해 문제 등 각종 문제에서 양국이 부딪칠 가능성이 상존하는데 바이든 행정부가 언제든 ‘강경 모드’로 선회해 추가 제재 조치를 내릴 수 있다”고 했다. 국무부는 지난달 발표한 ‘2021 국가별 인권보고서’ 중국 부분에서 신장 위구르 소수 민족 탄압 문제를 자세하게 서술했고, 이에 중국 정부가 ‘거짓 내용’이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미국 내에서 계속 커지는 반중 정서도 변수다. 미 여론조사 기관 모닝 컨설트가 지난달 29~31일 유권자 20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3%가 대중 고율 관세를 지지한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