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의 보수 성향 대법관이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했던 ‘로 대(對) 웨이드’ 판례를 뒤집어야 한다는 내용의 의견서 초안을 작성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3일 낙태에 찬성하는 시민들과 반대하는 시민들이 미 워싱턴에 있는 연방대법원 앞으로 몰려들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임신 6개월 전까지는 미국 여성이 자유롭게 낙태할 수 있도록 한 1973년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49년 만에 뒤집어야 한다는 미 연방대법원 의견서 초안이 유출되자 3일(현지 시각) 미 전역이 뒤집혔다. 대법원의 결정문 초안 전체가 유출된 것은 유례가 없는 데다가, 정치 이념에 따라 첨예하게 갈리는 낙태 문제를 다루고 있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파문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문건이 유출된 다음 날인 이날 오전 성명에서 “여성의 선택권은 근본적이라고 믿는다. 법의 기본적 공평함과 안정성 측면에서 판결이 뒤집혀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만약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다면,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출마하는) 모든 선출직 공직자는 여성의 권리를 지킨다는 공약을 내걸어야 하고, 유권자들은 이를 옹호하는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같은 당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공동성명에서 “대법원은 여성만이 아니라 모든 미국인에게 50년 내 가장 큰 권리 제약을 가하려 한다. 로 대 웨이드를 뒤집으려는 시도는 혐오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다시 낙태금지로 돌아갈 순 없어!" - 3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 연방대법원 앞에서 한 시위 참가자가 낙태 금지에 반대하며 "다시는 안 돼"란 글자를 붙인 옷걸이를 들고 있다. 과거 여성들이 의료 기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낙태를 하기 위해 사용했던 옷걸이는 현재 낙태 합법화 운동의 상징으로 쓰인다. /AFP 연합뉴스

미 대통령이 대법원의 결정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한쪽을 옹호하는 입장을 내는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다. CNN 등은 이번 사태를 통해 바이든 정권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진보 지지층을 다질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이 지난달 24~26일 유권자 1004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54%가 기존 여성 낙태권 유지에 찬성했고, 반대는 28%였다. 미국가족계획행동기금(PPAF), 낙태권리행동동맹(NARAL) 등 여성·인권 세 단체는 낙태권 지지 후보 당선을 위해 중간선거에서 1억5000만달러(약 1900억원)를 쓰겠다고 이날 밝혔다.

반면 공화당은 대법원 초안 문건의 판단을 지지하면서 ‘초안 유출은 범죄’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유출자를 철저히 조사해 법적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날 성명에서 “(유출된 초안이) 진본은 맞지만 최종 판결은 아니다”라며 “이번 일은 법원과 직원에 대한 모욕이자 신뢰를 손상하는 극악무도한 일이다. 유출 경위 조사를 지시했다”고 밝혔다.